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2 년도

기사회생에 기고만장한 새누리당(120416)

푸른솔1 2012. 11. 13. 11:19

 

입력 : 2012.04.16 23:05 | 수정 : 2012.04.17 05:13

선거 전 불거진 2명 '비리' 이제와서 당 차원 조사 없이 경솔하게 黜黨 거론하다니
18代보다 20여석 잃고도 승리감 도취, 잘난척해서야… 낮은 자세와 긴 안목 절실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겨우 과반을 넘기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다음날, 당내에서는 성추행과 논문 표절 의혹을 걸어 당선된 지 24시간도 안 된 2명을 자르자는 주장이 나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정치경험이 없는 젊은 비상대책위원에 의해 제기된 만큼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 "조사 후 조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면서 총선 최대 후유증으로 떠올랐다. 지금 '당선자 2명'의 숫자가 가지는 의미는 새누리당의 총의석수가 과반을 넘느냐 미달이냐의 갈림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숫자놀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후 새누리당을 지배하는 분위기다. 두 당선자의 이른바 '비리(非理)'는 이미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것이었다. 대체로 정당이 소속 당원의 출당(黜黨) 등 징계를 거론할 때는 그 사유가 당선 후 임기 중에 발생했거나 사안이 중대한 경우라도 당선 전에는 알지 못했을 경우다. 이번 두 당선자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그 사안을 알고도 당선시켰다는 점이다. 유권자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경우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the elected)'을 '임명직에 있는 사람(appointee)'이 가타부타하는 격이다.

그럼에도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당선자를 벌할 것이냐는 것은 새누리당의 자유다. 다만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의 경박성이다. 먼저 두 사람은 사안을 부인하고 있다. 또 성추행 미수 문제는 10년 전의 것이 왜 이제 불거져 나왔는지 석연치 않은 점, 논문 표절의 경우는 그가 학자가 아니고 체육인 출신이라는 점 등이 확인되고 고려돼야 한다. 그런데도 당 차원의 조사도 없이 일개 비대위원의 주장에 의해 정당인의 사형(死刑) 격인 출당을 먼저 거론하는 것은 지극히 경솔하거나 경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이 그렇게 엄격했다면 선거 도중이라도 사퇴시켰어야 했다.

두 사람 문제를 덮자는 것이 아니다. 확인 연후에 출당시켜도 늦지 않는데 지레 짓까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뒤늦었지만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됐다가 영어 원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자들의 마녀사냥에 걸려 낙마한 이영조 교수의 경우도 '인격살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신중성과 신뢰성에 먹칠한, 어이없는 처사였다.

새누리당은 지금 총선 승리에 겨워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많은 보수층도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을 '승리'라며 축제하고 자만할 처지가 아니다. 새누리당은 18대 국회에서 170석을 오가는 절대적 과반을 가졌다. 그러다가 정치를 잘못하고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사 한때 100석을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상대 당의 실수와 자만에 힘입어 152석으로 과반을 턱걸이할 수 있었다. 형식논리로만 보면 새누리당은 20여석을 잃은 것이고, 민주당은 80여석에서 140석으로 성장한 셈이다. 새누리당이 겨우 기사회생했을 뿐 '승리'한 것은 아니다. 과락(科落)을 겨우 면한 처지에 '기고만장'할 일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벌써 기고만장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한 친박(親朴) 인사는 사석에서 "이번 총선에서 정몽준·이재오까지 낙선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발언했다. 요즘 당내에서는 박 위원장에게 어떤 형태로든 '시비'를 걸거나 안 좋게 이야기하는 것이 '역적(逆賊)'이 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두 당선자의 문제를 야당의 '막말 수준'으로 몰고가는 것도 당내 들뜬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을 밀어준 보수지지층의 고육(苦肉)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젊은 층과 중도층을 기웃거리는 리버럴리즘이 고개를 드는 듯하다.

대통령선거까지 정확히 8개월 남았다. 근거 없는 구설에 휘말리는 것도 조심해야겠지만 국민의 판단기준은 정치권의 책임감,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성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 잘난 척 까불지 않는 것, 국민이 하는 소리를 경청하는 낮은 자세,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철학,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안보의지와 용기를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의 과반 유지가 오로지 박근혜의 힘이고 그의 당 개혁노선에 대한 지지에 기인한다고 말하지만 YTN이 선거 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좀 다르다. 민주당의 '막말'이 야권연대보다 더 영향을 끼쳤고,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민주당이 잘못해서'가 앞섰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선까지 가는 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겸손하게, 촐싹거리거나 교만하지 않고, 그리고 매사에 신중하게 가는 것이 보수(保守)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