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4 년도

분향소와 '노란 리본'(2014.07.29)

푸른솔1 2015. 1. 17. 16:39

분향소와 '노란 리본'                   2014.07.29

세월호 참사 대책 첫 단계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부터 野 政治 공세로 시기 늦춰져
만사에 때가 있고 경제 심각해… 공분했던 국민 고통스럽지만 日常 복귀 위해 리본 접을 때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난 이 시간,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노란 리본' 수백만 장은 햇볕에 서서히 바래고 장맛비에 후줄근해지고 있다. 서울의 시청광장 등 전국 곳곳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하다. 그래도 이제 그만 분향소를 거두고 노란 리본을 정리하자는 말을 누구도 꺼내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분향소와 노란 리본이 유지되는 것은 아직 사람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그렇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동시에 공연히 정리하자고 나섰다가 뭇매를 맞을까 두려워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속으로는 언제까지 분노와 애도에만 머물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축 처진 노란 리본과 뜸한 분향소의 의미다. 지난주 세월호 참사 관련 검색어 1위에 '희생자·피해자'가 아니라 '유족·유가족'이 올랐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분노와 애도에서 마무리로 옮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고, 어제·오늘 유병언의 사망, 유대균 체포가 관심의 초점인 것도 세월호 참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이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참사의 (광의의) 피해자들이며, 누구보다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도 바로 유족들일 것이다.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이 모든 일(그것이 비통한 것이든, 즐거운 것이든)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달리 말하면 시리(時利)가 있게 마련이다. 시간의 이로운 흐름을 탄다는 것은 곧 국민의 마음을 탄다는 뜻이다. 국민이 같이 슬퍼했기에 세월호 참사에는 100일 넘게 온 국민이 함께 있어 왔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국민의 감정과 느낌이 언제까지나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가족일지라도 어떤 변을 당했을 때 세상이 꺼질 듯 슬퍼하고 분노하다가도 세월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일상(日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모든 주검에 애도 기간이 있는 이유다. 그것이 인생살이고 인간 만사다. 세월호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금 민간경제의 침체가 심각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2분기 실질국민소득(GNI) 속보치'에 따르면 민간 소비는 0.3% 감소해 2년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은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매출 등이 감소한 것"으로 풀이했다. 특히 세월호 침몰과 연관된 지역의 경제는 크게 망가졌고, 전국적으로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 국민 생활이 우울해진 것이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의 '이후(以後)' 문제는 그 처리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 처리는 크게 세 분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사건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서 책임자를 가려내고 그에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다. 둘째는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없고 허망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온 국민과 정부가 정신 차리고 안전 의식을 장치하는 것이다. 셋째는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다.

첫째가 문제다. 관련자가 지금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데도 그 관련자 말고 더 '높은 책임자'를 특위에 끌어내겠다는 것이 야당 쪽 주장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미 오래전 '세월호 정치(政治)'로 변모했다. 피해 보상은 원칙과 선례(先例)의 대립에 걸려 있지만 예외성만 못 박아 인정하면 해결 못 할 것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세월호 처리는 국민의 염두(念頭) 순위에서 벗어나고 그럴수록 야당의 정치적 공세와 맞물려 유족의 순수한 마음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의 관심이 엷어지기 전에 세월호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는 이유다.

김지하 시인(詩人)이 썼다는 글이 최근 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김 시인은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을 읽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노년층은 만날 때마다 서로 "김지하 글 읽어봤느냐?"고 물을 정도다. '세월호 가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이 글이 계속 읽히는 배경은 처음 세월호 문제에 분노했다가 이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계층이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는 물음을 속으로 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쟁에 많은 사람이 비로소 '자기 의견'을 세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옛말에 "긴 병(病)에 효자 없다"는 것이 있다. 되뇌기도 고통스러운 참사이지만 그래도 온 국민이 이처럼 하나가 돼 애도하고 위로하고 분노하고 질타한 기억이 없다. 일찍이 그런 역사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세월호의 '젊은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이제 국민이 일상(日常)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노란 리본'을 정리할 시점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