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총리 지명, 正道로 풀어야 2014.06.24
후보 진퇴 놓고 지리멸렬 靑·與
左派매카시즘·포퓰리즘에 밀려 단순히 정치 손실만 계산하면 사퇴 또는 철회가 쉬워 보이나
국민 신뢰 더 중요하게 여기면 法治 방식 청문회 절차 밟아야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진퇴 여부를 둘러싼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태도는 한마디로 지리멸렬이고 졸작(拙作)치고도 최고의 졸작품이다. 문 후보자의 지난날 발언과 칼럼을 둘러싼 논의는 지난 1주일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때 '민족 반역자' '친일파'로 몰렸던 문 후보자는 시간이 지나고 그의 발언 전문(全文)이 알려지면서 '너무한 인격 살인 아니냐'는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문 후보자를 낙마시키기로 한, 아니 좌파 매카시즘과 내용 모르는 일반인의 포퓰리즘에 자리를 내주기로 한 청와대와 새누리당 수뇌부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이 굴러가고 있다.
문 후보자의 거취를 결정짓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문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는 것이다. 총리 지명자의 새로운(?) 문제점이 밝혀진 이상 그 자신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은 지명자인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것임으로 지명에 대한 은답(恩答)으로라도 더 이상 대통령에 누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 주는 것이다.
둘째는 그를 지명한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방식이다. 지명할 때는 몰랐던 '말'이나 '글'들이 나온 이상, 또 그것이 민족·애국 같은 거창한 명제(命題)와 관련된 것인 이상 지명자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고 따라서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대통령으로서 충분한 자체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또 하나의 인사 실패로 누적되는 불명예와 불신을 안게 되는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사실 관계와 정치적 득실을 무릅쓰고라도 일단 지명된 사람이 국회의 청문회 과정을 밟도록 절차를 밀고 나가는 경우다. 문 후보자에 관한 모든 '것'과 '말'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청와대의 애당초 결정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법 절차에 따라 국회가 가려 달라는 것이다. 이 경우 문 후보자는 자신에 대한 모든 비판과 주장에 대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기회를 갖게 되지만 문 후보자에 대한 인준이 부결될 경우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입을 정치적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3일 오후 현재 청와대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일부 정가에 흘러나오는 얘기는 청와대가 비교적 정치적 손실이 적은 자진 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문 후보자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안게 되는 정치적 피해는 그 어떤 경우든 피할 수 없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자신이 지명한 총리 후보가 낙마하는 상황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문제는 그래서 피해가 가장 적은 쪽으로 가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여기는 단순 산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이제 와서 피해의 정도 차이를 계산하는 것은 구차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가 자진 사퇴로 가닥을 잡는 경우 청와대는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결국 청와대가 종용해서 그리된 것이지 후보자 당사자가 정말 자진해서 그랬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명 철회로 가도 스타일을 구기기는 마찬가지다.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결국 피지명자를 나무 위에 올렸다가 뒤흔든 결과라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안다.
박 대통령이 취할 길은 청문회로 가는 것이다. 부결될 경우 대통령의 체면도 문제지만 여당이 대통령 뜻을 받들지 않을 정도로 대통령 권위가 떨어졌거나 여당 내의 '군기(軍紀)'가 엉망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지금 그래서 당권 경쟁에 나선 당의 실권자들이 앞다투어 문 후보자를 여의도로 오기 전에 밀어내고 낙마시키는 쪽으로 선수치고 있다. 그것 역시 청와대와 교감이 된 것이라면 그것은 청와대와 여당이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사람 하나 '불구자'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금 당권 싸움보다 자신의 정치 정도(正道)에 대한 확신, 꼼수로 가지 않는 정공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 중요한 문제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정면에서 정통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제도적·법치적 방식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문 후보자가 자신에 관한 모든 '왜곡 보도'의 내용들을 해명하고 정리할 기회를 갖도록 해주는 것이 적어도 자기가 총리로 지명한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국회의 정략 정치에 대한 질책이다. 문창극씨가 총리가 되느냐 아니냐는 별개 문제다. 그것은 국회가 결정할 문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어느 경우든 이미 손실을 입은 만큼 결과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지켜야 할 것은 국정의 문제를 편법으로 다루지 않고 정공법으로 간다는 것, 국회의 절차를 지킨다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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