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세종로 안과 밖 2013.08.20
일본은 우향우, 중국은 G2 변신… 우리는 '과거' 매달려 싸우기만
4대강, 전두환 재산, 公기업 비리… 司正당국, 손쉬운 과거만 칼 대…
'미래창조'는 국민·야당 동의 필요, 朴 대통령 파격적으로 임해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절 68주년 기념식이 열린 15일, 그 앞 도로와 인근 세종로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대학생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길 위에 드러눕는 불법 시위가 벌어졌다. 광복절은 나라의 생일이다. 이런 날 '광복'과는 차원이 다른 '정쟁(政爭)'이 판을 치는 나라―나라의 격(格)이 허물어진 현장이며 대한민국 오늘의 단면(斷面)이다.
이웃 나라를 보라. 지금 일본은 우파 정권의 탄생을 계기로 '제2의 일본'을 만들자고 난리다. 우리로서는 일본의 우향우(右向右)가 통분할 일이지만 일본 자기들로서는 2차대전 패전의 기억을 지우고 또다시 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고 나선 셈이다. 총리가 앞장서 전후 세대의 동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어떤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시진핑'이라는 리더십을 중심으로 미국과 맞서는 G2로서 면모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통치하에서 비판의 자유와 인권 향유라는 기본 가치가 제대로 누려질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중국 인민의 '동의' 아래 중국은 '중원'의 부흥을 향해 10억 인구를 일렬로 세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그런 일본과 중국을 좌우에 두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이 작은 반도나마 둘로 갈려 적대하고 있고, 그 남쪽의 반(半) 안에서도 도처에서 서로 잡아먹으려는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국인의 관심사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몰려 있다. 한 연구소는 "한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져 더 이상 선진국을 추격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고 했다. 우리의 '적자(赤字) 중산층'은 20년 새 2배로 늘었다는 조사도 있다. 우리는 다음 세대 '먹고살 거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자칫 그리스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로 싸우고만 있다.
정치를 잘못해서 그런가? 우리는 타협할 줄 모르고, 용서할 줄 모르고, 상대를 수용하길 꺼린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런가? 도처에 부정과 비리가 삭을 줄 모르고, 서로 더 못 먹어서 안달이 난 사람, 남의 고통과 불행에 눈감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일본에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힐난하지만 정작 우리는 '과거에 함몰된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는 경고음을 무시한 지 오래다. 과거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거울삼자는 것일 터인데 지금 우리는 거울을 깨고 있다. 엊그제 국회 국정조사장은 야당의 싸움터 같았다.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대통령과 여당은 무엇이 걸려서 야당과 얘기를 못 하겠다는 것인가? 잠재적 집권 세력인 야당과 대화하는 데 무슨 격식과 논리가 필요한가. 대통령은 통치도 하고, 정치도 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직업'이다. 설혹 야당이 무리하게 나온다고 해도 정국을 주도할 책임은 집권 측에 있다. 민주당의 지도부를 살려주는 것이 집권 측이 사는 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사정(司正) 당국이 하는 일들을 보면 더욱 한심하다. 감사원이 한다는 일은 4대강 등 전(前) 정부 때 일 파헤치는 것이 고작이고 검찰이 팔 걷고 나선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 환수고, 재벌 기업 때리는 일이고, 원전 등 전 정부 때 공기업 비리 캐는 일이다. 불법 집회나 시위 폭력 정치 등 인기 없거나, 종북 세력 척결 등 '골치 아픈' 일들은 피해 다닌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언급한 '기본이 바로 선 나라' '헌법적 가치와 법질서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려면 기업 비리 조사와 같은 강도로 노조의 불법 파업과 이기적 노조 행동들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함에도 그런 기미조차 안 보인다. 국민은 이제 그런 소리에 식상해 있고, 대통령의 발언에서 어떤 심각성과 무게도 느끼지 않는다.
전두환 조사나 대통령기록물 조사나 대선 개입 조사 등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골치 아픈 문제는 손도 못 댄 채 민생은 외면하면서 힘겨루기나 하고 만만한 '과거'와 손쉬운 '역사'에는 연일 압수 수색과 국정조사의 보도(寶刀)를 꺼내드는 정치권의 기회주의를 개탄하는 것뿐이다.
박 대통령의 '미래 창조'는 국민의 후원과 야당의 동의, 그리고 대통령 자신의 역사 인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야권의 일부가 취임 6개월도 안 돼 '박 대통령 아웃'을 들고 나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박 세력'의 견고성을 타진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 지지'의 약세를 본 것이다. 그를 흔드는 일은 자주 등장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고정관념이나 대세에 집착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임해야 한다. 앞으로 4년 반이 오늘의 연장이고 연속이라면 이 정권이 대한민국 현대 역사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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