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2 년도

"이명박 정권은 종북주의를 방치했다"(2012.06.25 )

푸른솔1 2012. 11. 13. 11:34

'KAL기 폭파는 김정일과 무관' 좌파 정권 '김현희 가짜'라 우겨
겁 많고 개념 없는 MB 정권, 이념적 눈치 보다 從北 키워
대한민국 체제 지키는 게 '이념'… 사건의 진실, 현 정부가 밝혀야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종북주의를 배양했고 이명박 정권은 종북주의를 방치했다."

KAL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씨가 지난 19일 TV조선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오늘날 이 땅의 이념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말이다. 좌파 정권이 종북주의를 배양한 것은 용혹무괴(容或無怪)한 일이나 이른바 우파라는 이명박 정권이 종북주의의 방치자로 규정되는 것은 너무나 분통 터지는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과거 독재·권위주의 시대에 있었던 모든 이념적 사안을 그들의 좌파적 시각에 맞춰 되돌리려 했고 또 상당 부분 그것을 실현했다. 그런 일들은 노무현 정권 때 본격화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KAL기 폭파 사건을 조작된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김현희를 '가짜'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그 사건을 북한 김정일과는 무관한 것으로 몰고 갔다. 'KAL기 폭파 조작설'은 2003년 천주교 일부 사제단이 시동을 걸었고, MBC의 PD수첩 등 지상파 방송들이 총대를 멨던 것을 국민은 다 아는 일이다. 그 밖에 부산 동의대 사건 등 범법자를 민주화 유공자로, 공권력을 '폭력'으로 치환하는 일이 허다했다.

문제는 좌파 정치에 식상한 국민이 500만표 차이로 당선시켜준 이명박 우파 정권의 태도였다. 500만표를 자신의 개인적 인기로 착각한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 촛불 시위 한 번으로 혼비백산한 그의 소극성과 겁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 때부터 자신이 대단한 진보 성향의 리버럴인 양 행세해온 그의 무개념은 결과적으로 종북주의를 방기하는 데 기여했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지난 4년간 제2연평해전 참수리호 희생자들의 추도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좋게 말해서 이명박 정권은 좌파의 움직임을 표면적으로 정지시켰을 뿐이고 보수·우파 정치에 능동적으로 기여한 것이 없다. 김현희씨의 지적은 그래서 옳다.

이제 이 정권이 말기로 접어들자 그동안 '정지'됐던 좌파·종북주의가 다시 기승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의 순서다.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보듯이 그동안 지하에서 암약했던 종북 세력은 이제 지상으로 치고 나와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나 종북(從北)이다. 그래 어쩔래?" 하고 대드는 꼴이다. 이념적 상황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이명박 정권의 당연한 업보이자 그를 500만표 차이로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국민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다.

이렇게 된 상황은 이명박 정권만의 책임이 아니다. 어쩌면 더 큰 책임이 집권당인 옛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에 있다. 새누리당에는 무늬만 우파인 정치인이 너무 많다.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정계 진출의 쉬운 코스로 집권당을 택했을 뿐 그 속(內)은 야당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는, 그래서 목소리 큰 일부 젊은 반(反)체제적 유권자에게 영합하는 이른바 '개혁파' 정치인들이 집권당의 발언대를 쥐고 놀았다. 설혹 의식 있는 정치인이 있었다 해도 그들에게는 의지(意志)가 없었다. 이들이 한나라당을 보수·꼴통으로 몰고 가는 좌파 세력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KAL기 폭파 조작 사건이나 무슨 인권위, 무슨 진상조사위의 과거사 '뒤집기' 전략에 맞설 것을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이었다.

이제 대부분의 국민은 KAL기 폭파 사건이 북한 김정일 세력에 의해 자행된 것이고 김현희가 그 범인의 한 사람이며 그가 사면받아 이 땅에서 종북주의자들의 위협에 시달리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조작설의 배후가 누구이고 조작설이 누구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소수인 종북 세력에 이끌려 정부고 여당이고 맥을 못 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그동안 수없이 흔들려온 이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의지다운 의지를 펴보일 기회다. '이명박 정권'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 차원에서 조작설의 배후를 조사하고 밝혀내야 한다.

김현희씨는 그 인터뷰에서 또 하나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발언을 남겼다. 그는 '이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념은 안보"라고 답변했다. 옳은 지적이다. 이념은 자기가 살고 있고 믿고 있는 가치 체계를 지키는 무기다. 그리고 그 무기가 곧 안보인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즉 안보(安保)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인 것이다. 이 이념 체계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정권이 수백 수천의 업적을 남겨도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2012.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