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매일신문/2012 년도

세 남자여, 상산의 뱀이 돼보라(120702)

푸른솔1 2012. 7. 17. 09:49

세 남자여, 상산의 뱀이 돼보라              2012년 07월 02일

 

미군 해병대는 전투 중 적진(敵陣) 속에 아군의 부상병을 남겨놓고 퇴각하지 않는 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삼고 있다. 그런 정신과 심적 상태는 부대원의 강한 응집력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전투 시 강력한 전투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적은 분리시키고 나는 하나로 뭉쳐 단합해야 이길 수 있다는 손자병법과 맥을 같이하는 규율이다.

5년 전 대선(大選) 무렵, 본란은 당시 한나라당에 중국 상산(常山)에 산다는 솔연(率然)이란 뱀 이야기(손자병법 구지 용병 편)를 들어 당의 단합을 고언해 드린 적이 있다.

 

솔연이란 뱀은 적이 나타나 공격해올 때, 적이 머리를 치면 꼬리가 함께 되튀어 올라 협공해주고 꼬리를 공격해오면 머리가 함께 대항하며, 몸통 쪽이 공격당하면 머리와 꼬리가 동시에 나서서 싸워준다고 한다. 우군(友軍)에 대한 위협에 한 몸처럼 상호 구원하는 솔연의 자세를 손자병법은 승전의 요체로 본 것이다.

 

대선 경선을 앞두고 5년 전의 친박`친이 대신 박`비박(非朴)으로 갈라진 분열을 보면서 상산의 뱀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세칭 비박(非朴)은 ‘세 명’의 ‘사나이’들. 상대는 야당이 ‘아이도 안 낳아본 사람’이라고 비아냥대는 ‘한 명’의 ‘여인’. 사나이 셋과 여인 한 명이 3대 1의 기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티격대는 시빗거리는 경선 룰(Rule). 제3자들이 보기엔 그다지 거창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룰 하나 놓고 사생결단하다시피 싸운다. 자`타칭 정계의 천하장사들이 심판을 겸한 관중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나꼼수 같은 샅바 싸움에 빠져 있는 꼴이다.

 

대선 후보를 뽑는 일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각자 자기네 당(黨) 안에서 당원들끼리 모여 ‘우리 당은 이 후보 추천합니다’ 하고 뽑아 세우고 그다음은 국민이 알아서 찍으면 되는 일이다. 굳이 후보 뽑을 때부터 비당원(非黨員)인 장외(場外) 국민이 남의 정당 일에 끼어들어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필요가 없다. 속칭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 방식)는 반대파 야당 지지층들이 끼어들어 역투표를 할 경우 그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바라지 않는 인물이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논란을 따져보자는 게 아니다.

 

단지 새누리당 대선 후보들의 경선 참여 신경전을 보면서 적진(야당) 앞에서 제 꼬리와 제 머리를 서로 치고 찌르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명색 여당 중진들이라는 남자들이 시비 걸고 꼬투리 잡는 게 고작 ‘여자가…’ 따위의 고양이 할퀴기 수준이니 더 답답하다는 거다.

 

특히 ‘박근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해야 도울지 말지 판단할 수 있다’고 한 정몽준 씨 경우 그의 말은 씨도 안 먹힌다. 아버지의 정치적 공과를 딸에게 묻고 연대책임을 지우겠다면 정 씨 자신은 아버지(정주영 회장)의 사업 성공 뒤에 박정희라는 인물의 후광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먼저 정확히 얘기해야 한다. ‘누구 덕으로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이) 이만큼 됐는데…’라고 물으면 뭐라 답할 것인가.

 

또한 그는 지난 2002년 대선 때 적진에 붙었다가 하룻밤 새 다시 적과의 약속도 깨고 나오는 바람에 지금 적진의 뿌리인 좌파 성향 정당에 정권이 넘어가게 했던(상당 부분) 원인 제공자다. 꼬리가 되레 제 편 머리를 쳤던 경우다. 기껏 5% 미만의 지지도를 맴돌면 정치인답게 대세를 읽어내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당의 전력 강화를 위해 솔연이 돼주는 것이 사나이가 택할 깨끗한 길이다. 그럼에도 5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제 꼬리를 물고 제 머리를 치는 싸움들을 하고 있다.

 

친이 세력의 핵심인 이재오 의원. 그는 친박`친이의 골을 메워줄 수 있고 또 메워주는 역할이 요구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남자 역시 정치 행보는 반대로 가고 있다.

왔다 갔다 하는 김 문수 의원, 그 또한 이제 참여 불참여 어느 쪽을 택해도 이미지로는 상산의 솔연이 되기엔 늦었다.

과연 세 남자들이 한 명의 여인을 상대로 사생결단해야 할 만큼 현행 경선 룰이 불합리하거나 불법적인 것인지 깊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상산의 뱀이 돼도 이길까 말까 한 대선 전쟁을 코앞에 앞두고 한 여인을 치고 있는 세 사나이의 행보는 보통 남자들의 시선과 정서로 바라봐도 왠지 ‘이발소 그림’처럼 가볍고 쪼잔해 보인다. 한 번만이라도 제발 좀 뭉쳐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