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6 년도

박 대통령이 모처럼 웃었다(2016.08.16)

푸른솔1 2016. 9. 12. 14:50
박 대통령이 모처럼 웃었다               2016.08.16
 

이정현 새 대표 맞은 박 대통령, 모처럼 웃으며 만족해했지만 정권 앞날엔 먹구름 가득
가장 중요한 정권 재창출 위해 李 대표, 당·청 관계 재건 나서고 대통령도 국면 전환 기회 삼아야


박근혜 대통령의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아니,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로는 처음 본 것 같다. 지난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비서 출신이며 복심이었던 이정현 의원이 새 당대표로 선출된 후 청와대에서 이 대표를 맞으면서 박 대통령은 그렇게 웃었다. 그동안 별로 웃을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웃으면 유약해 보일까 봐 자제해서인지 박 대통령은 항상 '근엄(謹嚴)'해 보였다.

웃지 않는 대통령의 스타일에 영향받아서인지 청와대와 내각도 국민에게 항상 답답하고 무거운 느낌을 줬다. 어찌 보면 경직된 것 같고 어찌 보면 무사안일인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대통령의 '부속품' 같은 느낌이었다. 새누리당도 그랬다. 여당의 지도자급 인사가 웃는 모습을 보인 적이 별로 없고 회의 모습도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비쳤다. 때로 웃는 척했어도 그 뒤의 장막 속에는 서로 비수를 벼리는 계파 싸움의 살벌함이 감춰져 있었다.

이 신임 대표는 원래 잘 웃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의 얼굴은 애당초 '웃는 얼굴'이다. 얼굴을 활짝 펴고 크게 웃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줬다. 그는 웃는 모습에서뿐 아니라 몸 전체에서 갑(甲)의 자세가 아니라 을(乙)의 냄새를 풍긴다. 그것이 그가 새누리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호남의 심장 같은 곳에서 당선된 기록을 낳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건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웃는 얼굴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정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새누리당 앞에 놓인 과제들은 그들의 웃음만큼 만만치 않다. 사드 배치 문제로 그 속살을 드러낸 미·중·일 간의 대(對)한반도 외교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 어느 경우라도 한국의 국방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와중에 파생되는 경제 보복과 실리의 싸움을 견뎌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청년실업 문제, 복지와 성장의 요철 관계를 조화롭게 정리해야 한다. 그것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업적'을 성공 쪽으로 유도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년 대선에서 이겨 정권을 재창출하는 일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정권 재창출의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후보 중 누구도 '새누리당의 위기'를 거론한 사람은 없었다. 이 대표는 당선 뒤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대선을 치르면 정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시인했다. 하지만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박 정권 성공'은 물 건너간다. '앞 정권 잡아먹기'가 전통(?)인 이 정치 풍토에서 여당끼리 교체해도 살아남기 어려운데 하물며 야당으로 교체되면 '업적'은 곧 '비리'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 여당이 지난 총선의 결과로 다수당의 위치를 빼앗기고 야당이 기고만장한 기세로 정권 탈환에 질주하는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새 지도부의 구태의연한 '박근혜 모시기'로는 정권을 지켜낼 수 없다.

당(黨)의 운용 면에서 이 대표의 파격적 접근 방식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권위적이고 패권적이며 딱딱하고 군림하는 자세의 여당 분위기를 바꾸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식의 파격만으로는 이 어려운 난국을 풀어낼 수 없고 박 대통령을 구원(?)해 낼 수 없다. 정치 질서, 정치 내용의 파격이 필요하다. 먼저 당의 기강과 기율을 잡아야 한다. '어디 재선 급이…'·'어디 비서 나부랭이가…'·'호남에서 당선된 게 훈장인가?' 등등 냉소를 뿌리며 뒤에서 버티고 있는 '구경꾼'들을 삼고초려하거나 아니면 정리해야 자신이 산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그렇다. 서로 '짜고 치는' 각본을 만들어서라도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믿고 들어주는 단계까지 당·청 관계를 업그레이드하고 더 나아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질타를 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그를 명실상부한 당대표로 대우하며 지원해주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야 이 대표는 야당과 마주할 수 있으며 야당에 '말발'이 먹히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이 대표의 '파격'에 맞장구를 쳐줬으면 한다. 박 대통령의 처지에서 지금까지의 여당 지도부는 믿을 수 없고 '배신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했다면 대통령은 비로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얻은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 대표가 선출된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비박이 당 주도권을 쥐면 박 대통령의 지난 행태로 보아 박 대통령과 당의 관계는 악화일로였을 것이 뻔하고 당·청의 몰락은 물론 정권 재창출 기도 자체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비박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패배라고 하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남은 임기 동안 손발을 맞추고 사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셈이다. 자신의 외연을 넓혀 야당 및 반대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할 기회 말이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의 의지를 되살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의 모처럼의 웃음은 생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