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5 년도

열세를 뒤집고 이기는 정치인들(2015.11.24)

푸른솔1 2015. 11. 25. 19:47

열세를 뒤집고 이기는 정치인들        2015.11.24

YS·DJ의 30년 각축과 협업… 현상 유지 위한 게임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베팅
시대를 보고 큰 판 다루는 大道의 정치 보여줘
요즘 야당 정치는 이합집산… 정권 쟁취 큰 그림 안 보여

196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30여년에 걸친 한국 정치의 이면사는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의 각축과 협업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굳이 승부를 따지자면 2승2패 동률이다.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와 대통령 싸움(1992년)에서는 YS가 이겼고, 대통령 후보 경선(1970년)과 제1야당 싸움(1987년 총선)에서는 DJ가 이겼다. 얼핏 보기에는 YS는 큰 싸움에서 유리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영호남 표(票) 차이라는 숫자 면에서 보면 DJ의 선전을 폄하하기 어렵다.

문제는 두 정치인이 상대적 '열세를 딛고서 이기는 방식'의 달인이었고, 서로가 상대방에게서 그것을 터득하고 활용했다는 점이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전할 야당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YS는 DJ에게 통렬한 패배를 맛본다. 1차 투표에서 과반에는 미달했지만 1등을 차지한 YS는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2등의 DJ가 3등의 이철승 지지표를 모으는 데 성공해 YS는 역전패를 당했다. 그때까지 DJ를 얕잡아 보는 데 익숙(?)했던 YS였기에 패배는 더욱 아팠다. 그러나 그는 당원과 국민 앞에서 약속한 대로 열심히 DJ 지원 유세를 했다. 그는 후에 토로했다. "나 혼자 지방 유세를 다녔다. 수행원도 없고 청중도 별로 없었다. 밤마다 술을 마셨다. 때로는 소리 지르며 울었다. 나락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YS는 그때 세 가지를 배웠다고 했다. 첫째, '정치란 이길 때까지 이긴 것이 아니다'라는 것, 둘째, 막강한 여권 세력을 상대로 '혼자서 이길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셋째, DJ를 무서운 경쟁자이면서 민주화 동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가 DJ와 손잡고 민추협을 만든 것도 그 교훈(?) 때문이었고 '배신'의 비난과 '동지의 이탈'을 무릅쓰고 3당 합당(1990년)을 강행하고 결국 대통령이 된 것도 그 결과였다. YS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비록 정치군인과 손잡고 대통령이 됐지만 정치군인을 단죄하는 것으로 그 빚을 갚으려고 했다." 전두환·노태우를 감옥에 보내고 하나회를 숙정한 것이 '배신'에 대한 속죄였던 셈이고, 한편으로는 DJ를 이기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비화(�話)가 하나 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5년 후 민간인 정부로의 이양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치군인'의 안전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야당 파트너를 물색했다. 민간 정부라는 타이틀에 영호남 화합이라는 빛깔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을 가진 참모들이 당시 제1야당인 DJ 측과 접촉했다. 이를 감지한 제2야당의 YS가 제3야당인 JP에게 달려가 손잡고 영남의 재집권이라는 명분으로 DJ를 제치고 3당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YS가 선제공격에 성공한 것이다.

YS가 DJ로 인해 배운 것이 있다면 DJ도 YS에게 배운 것이 있다. 그 역시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관한 셈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는 YS가 3당 합당을 통해 성공했다면 자기라고 5·16 세력인 김종필과 손잡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DJP 연합 체제를 만들어 대권 장악에 성공했다. YS와 DJ의 '열세에서 이기는 방식'은 노무현에게도 전수(?)됐다. 노무현은 그 나름의 연합군을 만들거나 집산 이합 전략을 가동해 이회창호(號)를 좌초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들이 혼자서, 또 자기 힘만으로 싸웠을 때는 번번이 졌다. 그렇다고 둘이서 단일화한 적은 없다. 음모론적 발상이지만 YS와 DJ는 서로 상대방이 이기는 꼴을 볼 수 없어서 애써 단일화를 피했다. 자기가 아닌 상대방으로 단일화했을 때 YS-DJ 연합군은 이길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각자의 대권 꿈이 무산될 수 있기에 그들 둘이서는 단일화하지 않기로 의기투합(?)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땅의 민주화는 5년 지각한 셈이 아닌가?

YS 서거로 그 시대의 주인공들은 모두 퇴장했다. 그런 마당에 '열세를 딛고 이기는 정치'를 되새기는 것은 오늘의 정치가 너무 하찮아 보여서다. 물론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하지만 지도자의 판단과 결단력, 실행력은 지금도 못내 아쉽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YS나 DJ는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게임을 한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베팅을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요즘의 야당 정치에서도 이런저런 형태의 이합집산과 단일화 게임은 있어 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는 커다란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기껏 국회의원 숫자 하나 더 늘리기 위해서, 자파 세력을 불리기 위해서 그리고 좌파 연대를 위해서라는 시시한(?) 목적만 눈에 보였다.

둘이 합해도 하나를 이길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약해졌거나 서로 합심하는 것의 대의(大義)가 희박하거나 수용하 는 측이 수용당하는 측을 압도할 능력이 없거나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YS나 DJ처럼 앞에서 '머리'가 움직이면 그 기운이 '꼬리'까지 전달돼 한 몸통처럼 기능하는 리더십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YS나 DJ가 새삼스러운 것은 설혹 판단은 달랐어도 시대를 보며 사람을 이끌고 큰 판을 다룰 줄 아는 대도(大道)의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