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의 정치 2013.11.19
國政 운전 '교대'하는 것인데 派黨만 남아 대치하는 與野
野는 정치싸움에 '쟁점 낭비' 與는 뭘 내줘야 할지 몰라…
民生법안 국회서 낮잠 자고 되는 일 하나 없어 국민은 짜증
이런 상상을 해본다. 오늘 시점에서 여당과 야당이 뒤바뀌어 민주당이 다수당이고 새누리당이 소수당 입장이라면 정국이 풀릴까? 단언컨대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은 국정원 댓글을 물고 늘어질 것이고 민주당은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여야의 대치 상황에는 정치 철학도 없고 논리도 없고 사리 판단도 없고 파당만 있다는 얘기다. 그저 여당이니까 밀어붙이고 야당이니까 반대하는, 다분히 습관적이고 도식적이고 부화뇌동적이고 퇴행적이다. 의회정치 한답시고 한 것이 60년이고 민주화됐다고 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우리 정치는 정말로 치졸하고 부끄럽다 못해 절망적이다.
민주정치의 요체는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있다. 서로 국정의 운전석을 바꾸어가며 내가 운전할 때는 나의 장점을 살리고 상대방이 운전할 때는 단점을 보완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오래 운전석을 차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고, 이번에는 네가 운전하지만 다음에는 내가 한다는 교대(交代) 의식을 근본으로 한다. 선거는 여러 정치 세력이 이번에는 '내 차례'임을 다투는 방식이고 여기서 이기면 헌법이 정한 기간에 내가 운전한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절차다. 이번은 '박근혜 차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이 결정해준 절차와 과정과 약속이 휴지 조각이 되고 있다. 내가 이기면 이것저것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지켜지지 않고 상대방은 그것을 못 하도록 길목을 막고 있다. 이럴 바에는 왜 애써 정당을 만들고 막대한 돈을 들여 선거를 하고 목숨 내걸고 집권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과거에는 정권마다 트레이드 마크가 있었다. 노태우 정권 때 대(對)소련, 대중국 국교 정상화가 있었고 김영삼 때 금융실명제, 김대중 때 남북 정상회담과 기초생활보장, 노무현 때 지방 분권과 신행정수도, 전시작전권 이관, 한·미 FTA, 그리고 이명박 때 4대강 정비 등등 정권이 치중했던 '업적'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도 박근혜표 '국정'은 한 발도 못 나가고 번번이 야당에 발목 잡혀 있다. 국민이 뽑았으면 최소한의 일은 하게 해줘야 다음번에는 상대방도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정권 잡았다고 모든 것을 통째로 위임받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서 국민이 반대한 숫자만큼 견제당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여당이 잘못 가는 것이 있으면 야당이 바로잡는 것 역시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럴 때 사용되는 규칙이 있다. 인류가 태곳적부터 서로 다름을 조정하는 데 써온 다수결(多數決)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수결도 찬성과 반대가 양분됐을 때나 통용됐지 견해들이 더 세분되고 다양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솔로몬의 저울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는 다수결을 넘어 '5분의 3'을 모든 조정의 잣대로 걸어놓고 있다. 다수결도 어려운데 민생이 걸린 모든 문제를 5분의 3에 걸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4년 후 정권을 잡으려면 지금 여당의 약점인 국정원 개혁 등 쟁점들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여당을 궁지로 몰아 내년부터 거의 매년 있을 각종 선거에서 단계적으로 이겨나가야 한다. 여당이 헛발질하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면 된다. 지금 민생을 볼모로 사사건건 정치 싸움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쟁점의 낭비고 차별화의 소모다. 역지사지의 정치는 정권을 주고받는 정치고, 서로 다름을 확인하는 정치고,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는 정치다. 그래서 국민으로 하여금 일정한 주기로 보수·우파의 정치와 진보·좌파의 정치를 교대로 맛보고 비교하게 하자는 것이다.
다만 역지사지의 정치에는 그것을 이끌어갈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여당에도 그렇고 야당에는 더욱 그렇다. 그 리더십이 지금 우리 정치에는 보이지 않는다. 역지사지의 정치를 이끌어 가야 할 책무는 오히려 여당 쪽에도 있다. 야당이 달라고 하는 것 중 어떤 것 또는 무엇을 줘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여당의 역지사지다. 앞으로 야당할 때를 지금 생각하는 리더십 말이다.
지금 국민은 피곤하다. 피곤하다 못해 짜증이 난다. 자고 깨면 매일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말장난 말싸움이나 하고, 시급한 민생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다. 여론 지지율이 60%에 가깝다는 대통령은 야당과 기(氣) 싸움 하는 중이고 종북 세력은 매일 악을 쓰고 달려들고 야당은 걸핏하면 거리로 나가는데 집권당과 정부는 무기력 그 자체다. 대통령의 국정 연설도 아무 효력이 없는 것 같다. 이 나라에는 지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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