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선거 2010.07.25
정당이 공천장사 해놓고 '손가락 기호' 보고 찍으라니
'좋은 것' 대신 '덜 나쁜 것' 고르라고 강요하는 꼴…
정당 후보도 투표로 뽑는 미국식 선거 도입할 만
국민은 국민 수준의 정치를 가질 뿐이라고들 한다. 그 나라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 수준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 이 정도로 정체돼 있는 것이 우리 국민의 탓이란 말인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 정치 수준은 국민수준이라기보다 정당(政黨) 수준인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정당의 수준도 결국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일 터인데 거기에는 저항감이 느껴진다. 우리의 정당들은 '괴물'에 가깝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정당의 그늘에 들어가면 '정치꾼'이 되고 괴물의 하수인이 된다. 일종의 개체(個體)변이라고나 할까.
요즘 우리는 한국의 대의(代議)민주주의에 회의를 느낀다.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자기들끼리의 이해타산에 따라 짜맞춰 놓은 '메뉴' 중의 하나를 고를 수 있을 뿐이다. 때로 그 선택은 '좋은 것'이 아니라 '덜 나쁜 것'일 수밖에 없다. 원래 민주제도의 취지는 국민이 어느 누구를 막연히 선정해야 하는 절차와 어려움을 덜기 위해 정당 차원에서 사전에 추려내서 국민의 선택을 돕는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기들끼리 정치적 거래를 해서 국민의 선택을 강요한다는 데서 그 취지는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2지방선거 때도 그랬고, 오는 7·28재·보선도 그렇다. 유세장 주변에는 온통 '손가락 한 개', '손가락 두 개'만 있을 뿐이지 출마자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누가 출마했는지는 알 것 없고 그저 ○번 찍으면 된다'는 식이다. 미국 등 정치적으로 숙달된 나라에서는 언론이 민주·공화를 가를 뿐이지 선거전에서는 '이름 석 자'로 행세하고 평가받는다. 먼저 공인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고 그가 속한 정당은 이차적이다. 우리 선거는 순위가 정반대다. 그러니 우리 국회나 선출직 공직자 사회에서는 "어떻게 저런 인간들이 뽑혔나" 한심할 정도의 파렴치한 범법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6·2선거가 끝난 뒤 집권 여당 사람들은 "공천이 잘못됐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공천의 전통(?)을 따르고 또 공천을 '거래'하는 판에서 공천의 내용이 잘못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식으로 공천하면 원천적으로 공천이 잘못되게 돼 있다. 실력자끼리 나눠 먹고, 정파끼리 갈라먹고, 현직이 미래의 '싹'을 잘라먹는, 이런 공천으로 잘될 턱이 없고 제대로 된 공직자가 나올 리 없다.
문제는 의식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공천장사와 공천 야바위는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도 미국식 예비선거제도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대통령선거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정당의 경선과정에서 하고 있는 '여론조사' 대입 방식으로는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매번 여론조사 대입 범위를 놓고 싸우다가 원수 되고, 때로는 경선에 불참하거나 불복해 결국 당이 깨지는, 그래서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을 우리는 여러 번 경험했다.
우리나라는 정치인이나 국민이나 '표(票)'만을 믿는 경향이 있다. 또 사실 그것이 당연하고 타당하다. 등록된 정당원이나 당 소속이 아니더라도 직접 한 표를 행사해 그 정당의 후보를 '선거'로 뽑는 것만이 우선 민의를 일차적으로 반영하고, 둘째 어떤 불복이나 이탈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의(異議)의 소리가 가장 작다. 지금 형편으로는 보완할 부분도 많고 경비도 많겠지만, 현 제도의 후유증을 감안하면 그 방법이 가장 해봄직하다.
무엇보다 이런 제도적 전환을 가능케 하는 것은 6·2선거 등을 통해 알 수 있었듯이 국민의 정치참여 의식과 수준이 현격히 상승됐다는 점이다. 이제 국민은 여덟 사람을 동시에 뽑을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선거에 민심이 실리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투표의 결과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여론조사'라는 것이 더 이상 금과옥조가 아니며,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국민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각제이기는 하지만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선거와 투표가 일상생활화하고 있다. 우리도 선거를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