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매일신문/2011 년도

대경 독립공화국을 세워야 하나(110516)

푸른솔1 2011. 5. 24. 16:23

대경 독립공화국을 세워야 하나                           2011년 05월 16일

 

10여 년 전 중국 베이징의 고궁(古宮)을 방문했을 때 자금성 내 박물관의 관장을 만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중국의 상징적인 황궁 박물관 소장품이 그저 그런 느낌을 준다. 국보급들은 대만이 다 가져갔는데 이제 국력도 커졌고 하니 사든지 뺏든지 베이징에 소장하고 싶은 욕심은 없느냐?’ 그의 답은 이랬다.

 

‘어디에 두든 중국의 유물이고 중화인민의 것이다. 굳이 본토에 둬야만 된다는 이유가 없다.’ 어차피 아직은 정치 상황으로 볼 때 못 가져올 유물이니 배포 크단 소리나 듣겠다고 한 말로 들릴 수도 있으나 틀이 큰 사고임은 분명하다.

 

 과학벨트도 끝내 물 건너갔다. 대구경북으로서는 자금성 박물관장처럼 이 벨트, 저 단지 다 딴 동네로 떠내려가도 ‘어차피 한국 땅에 있는 거’라며 배포 크게 마음먹는 것밖엔 치솟는 울화를 삭일 길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나 배포 크오!’라며 계속 헛물만 켜고 있을 계제도 못 된다. 최근 몇 가지 정부 정책만 놓고 보라. 신공항, 첨단의료복합단지, 어느 것 할 것 없이 물 건너가거나 반 토막 사업으로 쪼그라들었다.

 

경제 수치는 어떤가. 꼴찌 GRDP는 제쳐 두고라도 당장 올해 1분기 수도권은 광공업 생산 15%, 대형소매점 판매 규모 7.1%, 취업자 3%가 늘어났다. 모든 부문이 증가, 증가였다. 거기다가 소비자물가는 4.2%밖에 안 올랐다. 한마디로 룰루랄라다. 그런데도 분당 사람들, 야당 찍었다.

 

반면에 대구경북권은 어땠는가. 광공업 생산 증가? 천만에 3.9%나 떨어졌다. 그것도 3분기 연속 감소다. 소매점 판매 증가율은 충청권(11%)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취업 고용 역시 전국 평균치도 못 따라갔고 거꾸로 소비자물가만 수도권보다 0.4%나 더 올랐다. 취업은 안 되고 생산성과 소비 수준은 낮아지고 있는데 물가만 더 올랐다는 얘기다.

 

그런 판에 지난주 LH, 국민연금마저 경남, 호남으로 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과학벨트까지 물 건너갔다. 이쯤 되면 대구경북 650만 주민이 어떤 대접을 받고 사는지 알 만해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년에 또 한나라당 찍고 도지사님 옆자리서 단식이라도 시작해야 하나? 어린아이와 어르신들 빼고 대충 500만 명이 동시 집단 단식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전 세계 언론과 전국 병의원 병실이 난리가 날 것이다.

 

문제는 기네스북 기록이니 링거 병 500만 개를 긴급 생산, 수입할 수 있나 없나 따위의 얘기가 아니라 설사 그런 지경이 된다 해도 이 나라의 정치 지도그룹은 정신 차릴 감성도 지적(知的) 능력도 없다는 점이다.

과학벨트 경우 대구`울산`포항권이 세계서 유일하게 3대 가속기(방사광, 양성자 등)가 있는 곳이고 노벨상 수상자 32명을 배출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최종 선택한 곳이며 전국 연구 중심 대학 5개 중 3개가 집중된 곳이다. 그런데도 표 아쉬운 선거 때의 공약을 핑계로 대전으로 보냈다. 이게 과연 지적 능력 있는 지도그룹이 내릴 결정인가?

 

국가 대계(大計)는 철저한 과학성과 이성적 합리로 판단돼야 한다. 지금 정치권은 그런 철학과 지적 인식은 고사하고 정권을 쥐여준 이유조차도 벌써 까먹은 지 오래다. 이번 LH와 국민연금을 나눠주게 된 혁신도시 개발도 노무현 정권이 뿌린 국론과 지역 분열의 씨앗이었다. MB 정권은 그런 정치 논리 우위의 국책을 남발했던 노무현 씨앗의 폐해를 끊는 용기 있는 통치력을 보였어야 했다. 그걸 못 하고 오히려 더 좌고우면(左顧右眄), 정치적 눈치만 살펴왔다. 그 나물에 그 밥이 돼버렸다.

 

바지벨트야 허리에 걸든 엉덩이 쪽에 걸치든 상관없지만 과학벨트 같은 국책 사업은 정치 논리가 아닌 과학적 논리에 따라 제자리에 세워져야 한다. 표 몰아주고 왕따된 대구경북, 이제 갈 데까지 다 갔다. 막장 코앞이다. 자금성 유물처럼 벨트든 단지든 어차피 한국 땅에 있으면 됐지 어디에 간들 어떠냐고 배포 부릴 한계도 넘었다.

 

김관용 도지사님께 단식 4일 이후는 방문이 되레 폐(弊)가 될 것 같아 위문 인사만 보내드린다. "어차피 눈에는 표밖에 안 보이고 단식의 충정도 모를 사람들 상대로 몸 더 상하지 마시고 그 정도 선에서 건강 추스르신 뒤에 수도권 정권에 맞설 ‘대경(大慶) 독립공화국’이라도 세우겠다는 각오로 다시 일어나 싸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