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6 년도

分權형 개헌과 정계 개편(2016.06.07)

푸른솔1 2016. 6. 27. 18:47

分權형 개헌과 정계 개편         2016.06.07

권력 집중된 대통령제, 개인 숭배화로 효율성 한계에… 이제는 분권형 개헌 검토할 때
당장 걸출한 영도자 기대 말고 권력의 분산·타협의 정치로 복합의 시대 헤쳐나가야


4·13 총선을 전후해 민심(民心)은 크게 요동쳤는데 정치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20대 국회는 몇몇 얼굴이 바뀌었을 뿐 19대 국회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친박-비박 싸움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친노-비노 간 전리품 나누기에 여념 없으며, 중도·완충을 자처했던 국민의당은 호남과 비호남 사이에 엉거주춤이다. 누구보다 구태의연(?)한 것은 청와대다.

우리 정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 현명한 영도자가 없다는 사람[人的]의 문제가 있지만 대통령제의 효율성도 이제 한계에 왔다. 권력의 집중화가 문제다. 그나마 그 권력은 무슨 친(親)자 돌림의 형태로 개인 숭배화돼 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얽히고 인적으로 줄 세운 권력은 당연히 패권화되게 돼 있다. 이것이 정치의 비타협과 극한 대립을 불러오고, 거기에 이념적 색채까지 입혀져 국민적 갈등과 대결을 조장해왔다.

대통령들은 독재는커녕 국회와 야당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자세를 낮추면 될 일도 소통은 않고 찍어 누르려고만 해왔던 것이 대통령중심제의 문제였다. 그리고 모든 정치인은 오로지 대통령 자리만 보고 달려왔다. 집권당은 맹목적 충성과 복종, 야당은 논리 없는 무작정 반대와 극한투쟁으로 치달아 왔다. 국민의 입장에서 '도'와 '개' 이외의 선택 여지가 없으니 정치권은 '너희가 우리 안 찍고 어딜 가겠느냐'며 오만방자하다.

이제 분권형 개헌을 검토할 때다. 제도를 바꾼다고 우리의 정치가 곧 생산적이고 안정적으로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 지도자가 사회의 다양한 요소를 모두 섭렵하기 어려운 복합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제 정치의 방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또 당장 걸출한 영도자를 기대하기보다는 권력의 분산과 타협의 정치로 많은 '지망생'들을 수용하는 장점도 있다.

내각제 개헌은 선거 때마다 번번이 약속만으로 끝났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는 개헌을 공약하거나 언질해 놓고도 집권한 뒤에는 지키지 않았다. 후보들이 공약을 하는 것은 분권형 개헌이 그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있거나 세력 연합의 미끼로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먹튀의 대상이 됐던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지 제도적 결함 때문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개헌을 추진하려면 정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더불어민주당의 친노는 그들의 '다음 권력'에 대한 욕심과 기득권 때문에서라도 개헌에 찬동할 리가 없다. 친박의 영수인 박 대통령의 '소신'과 친노의 수장 문재인 전 대표의 '야심'은 권력 구조의 재조정 또는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을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을 제외한 정치권 전부가 대동단결해서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친박과 친노의 일부가 개헌 쪽에 가담한다면 개헌선인 3분의 2 확보가 가능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중대한 정계 개편을 의미한다. 새누리당의 한 비박 고위 인사는 "우리는 더 이상 친박에 인질 잡혀 또다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보조 기구 노릇을 할 수 없다"며 친박과 친노를 뺀 나머지 정계의 의견 결집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어느 국민의당 중진은 "우리는 친박이든 친노든 그 어느 쪽도 정권을 잡는 사태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의 한 소식통은 친박과 친노를 뺀 정치권의 '라운드 테이블'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것은 흔히 있어 왔던 것처럼 여와 야의 주류를 중심으로 각각 세(勢)를 종(縱)으로 결집했던 것과는 달리 정치권을 횡(橫)으로 가르는 개편이 될 것이다.

이름까지도 나왔다. 지금까지 대선 주자로 여론조사에 빈번히 거론됐던 인물들이 망라됐다. 새누리 쪽에서 김무성·오세훈·김문수, 더민주 쪽에서 김종인, 국민의당 쪽에서 안철수 그리고 그 밖의 손학규씨 등이 원탁회의의 멤버로 거명됐다. 상황에 따라 중도에 속하는 남경필·안희정 지사 등 비교적 미래 지향적 '잠룡'들에게도 참여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원탁 모임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막연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연합체가 결성된다고 해도 이를 이끌어 갈 구심점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지, 회의투성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결정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곧 애국심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은 현 정치권 구도의 연장선상에서는, 그리고 권력이 외곬으로 집중된 왕정(王政)적 체제로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시대 인식이다. 앞으로 10여년 우리는 북한 체제의 치명적 전 환, 미·중 관계의 악화에 따른 외교·안보적 비상사태, 그리고 민생과 경제의 혼미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 난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지도자들이라면 머리를 맞댈 수 있다. 자신들의 개인적 욕심을 잠시 접어둘 때 결과는 때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절제와 기득권 양보의 미덕이 없으면 한국 정치의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