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4 년도

軍 지휘계통 전원 물러나야(2014.08.12(

푸른솔1 2015. 1. 17. 16:42

軍 지휘계통 전원 물러나야      2014.08.12

軍은 대안 없어 고쳐 써야 할 존재… 敵이 비웃고 국민이 안 믿는 상황
'윤 일병' 파장 오래 가면 치명상… 報告 못 받았어도 자진사퇴 마땅
병력·무기 충원·첨단화 계획 등 軍 관리 업그레이드 방안 내놔야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군(軍)은 대체(代替)가 불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잘못하면 바꾸면 된다. 정치권력은 사실 교체를 위해 대기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교육, 문화, 복지, 건강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건강한 사회는 항상 대안(代案)이 활성화돼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군(軍)은 대안이 없다.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다. 성능이 나쁘면 고쳐서 쓸망정 군 아닌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윤 일병 사태로 드러난 군의 문제도 나쁜 성능들은 고쳐서 쓰는 쪽으로 가야지, 군을 쪽박 내서 가상의 적(敵)들로부터 멸시당하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 파장이 오래 지속되면 우리 군은 치명상을 입는다.

5·16 이후 근 30여년 군인들이 대거 정치에 진출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 기자들은 군의 비리나 불상사 또는 사고 등에 관한 기사를 아예 쓸 수 없었다. 그때 군 내의 사고는 많았다. 비리도 많았다. 수치는 없지만 아마도 지금보다 더 많았다고 본다. 그러나 그에 관한 기사는 통제됐고 그것을 어기면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물리적으로 혼이 나고 '북괴(北傀)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그런 기사를 게재했다는 거짓 자술서를 쓰고야 풀려나왔다. 정치탄압에 관한 보도는 그래도 '민주화' 석 자로 위로라도 받았지만 군 내 문제에 관한 기사는 그야말로 본전도 못 건지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정말 군의 기고만장에 철퇴를 가하고 싶었다. 그런데 엊그제 윤 일병 사건을 두고 북한 노동신문이 1면 톱으로 '괴뢰군' 운운하며 우리 군과 정치권을 한껏 조롱한 것을 보고 전율이 느껴진 것은 나이 탓이고, 세월 탓일까?

그러면 우리는 사태를 빨리 매듭짓기 위해 무엇을 고치고 어떤 부속품을 갈아 끼울 것인가? 우선은 책임자들이 물러나는 것이다. 인적(人的) 파장을 줄일 꼼수를 부리지 말고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그리고 당시 지휘계통에 있던 장교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 죄가 있고 없고, 보고(報告)를 받고 못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야 국방과 안보가 시급한, 이 중차대한 시기에 온 나라가 비(非)전투적 사안에 휘말리는 불안한 상황을 빨리 종식시킬 수 있다. 또 그것이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엄중한 경고가 된다. 그래야 그들이 군인이다.

둘째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군의 관리를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부속품'을 개발해야 한다. 군 인력 계획, 즉 신병을 얼마나 더 또는 덜 뽑고 복무연한을 어떻게 조절하며 병영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고 무기체계를 얼마나 업그레이드할 것이며 여기에 어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지를 국민 앞에 소상히 내놓아야 한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모병제도 또는 직업군인화의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현대전은 진지를 점령하고 깃발을 꽂는 식의 전투개념이 아니다. 머리 위로, 전선을 넘어 장사정포와 미사일·항공무기들이 날아다니는 전쟁에서 과연 20개월짜리 신병이 진지 안에서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 것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덮어놓고 국민개병제(皆兵制)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군대 안 가는 사람이 대신 소정의 세금을 내고 그 돈으로 직업군인을 고용하는 제도도 생각해봄 직하다. 그러면 적어도 윤 일병 사태 같은 초년병 불상사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윤 일병 사태에 겁(?)먹은 사람들이 지난 주말을 이용해 부리나케 군대 간 아들과 애인을 면회한 모습이 TV에 잡혔다. "걱정 많이 했는데 아주 잘 있더라" "우리 부대에는 그런 일 없으니 안심하라고 하더라"는 등의 밝은 얼굴과 안심한 목소리는 그간 언짢고 가슴 졸이던 국민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다. 사실 전체 군부대로 보면 사고가 나는 부대는 극소수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일반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륜과 패륜과 폭력과 자살의 비율이 군대로 옮아간 정도 이상은 아닐 것이다. 일반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폭력에 비해 군의 불상사가 월등히 많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군의 문제는 엄격한 상하의 계급사회에서, 사회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비정상 행태이기에 그 강도는 훨씬 강할 수 있으며 그래서 더 심각한 것이다. 무엇보다 군 상층부에서 "군대란 그런 것을 견디어내는 특수 조직이고 여기에 일반 사회가 사사건건 개입하면 군대는 이끌어갈 수 없다"는 식의 폐쇄적 사고가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군대를 개선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거기에 오래 매달릴 여유가 없다. 적(敵)들이 우리 군을 깔보고 조롱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우리 국민 내부에 군의 불신과 무능을 탓하는 풍토가 이어져 "이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이 무엇보다 두렵고 무섭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