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3 년도

민주당과 '친노'(2013.08.06 )

푸른솔1 2013. 8. 23. 16:12

민주당과 '친노'          2013.08.06

親盧, 감성과 동정적 지지로 뭉쳐 시간 초월한 '지도 이념'은 없어… 친노 분류 민주당 의원 50% 넘어
거리투쟁 강경노선 밀린 상황서 국민의 선택 더욱 신중해질 것… 민주당의 정치적 결단 필요한 때

민주당에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그중 핵심적인 것은 지도 노선 문제이고 그 핵심에 이른바 '친노(親盧)' 문제가 있다고 본다. 두 번의 선거에서 패배한 것을 모두 친노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당(�)의 중심이 친노에게 휘둘려 친노를 업거나 친노에게 업혀서 국민의 지지를 하나로 모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 패인의 하나로 지목될 수 있다.

민주당(또는 그의 전신)은 김대중·노무현 두 번의 대선에서 정권을 획득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친노'(광의의)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친노는 이제 그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고, 효용성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번의 선거에서 진 것이 그 정치적 증거다. 과거 군부 통치 시절의 개발 독재, 정보 독재, 인권 탄압, 민족 불화(不和) 등에 대항해 등장한 민주화 세력의 '젊은 피', 386, 학생운동권, 시민 단체 그리고 노무현 정권 봉사자들이 친노의 핵심 구조라면 이제 이 세력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해야 할 단계에 왔다. 왜냐하면 이 구조의 친노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정권을 담당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은 독재와 탄압이 싫어 야당을 찍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가 질식해서 민주화에 목말라하는 것도 아니며 먹고살기가 괴로워 '못살겠다'가 아니다. 국민은 더 나은 대안(代案), 더 국민의 강녕(康寧)에 충실한 효율성을 원하고 있다. 친노와 야당이 대안과 효용성보다 투쟁에 몰입해 있는 한, 이들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우선 친노는 세력을 이끌 강력한 지도자가 없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을 내세웠으나 그는 역부족이었다. 그를 이어 친노를 이끌어 갈 전국 규모의 정치인은 아직 안 보인다. 친노의 이념도 수명을 다했다. 친노는 독자적 지지 기반이 없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국민 대부분은 그의 입지전적(立志傳的), 탈권위주의적, 서민적 위상을 좋아했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정치'를 개탄했던 사람들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성적이고 동정적인 것이지 시간을 초월한 지도 이념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노의 중진이라는 '원조 친노'들이 문재인 중심의 친노에게 매달려 있지 않고, 좀 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도 친노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것들이다. 시대적으로 볼 때 친노의 역할과 노선은 다분히 '틈새적'이었고 틈새는 본질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 친노를 어찌할 것이냐에 있다. 지금 민주당 소속 의원 127명 가운데 '친노+범친노 또는 근(近)친노'는 50명을 넘어 근 50%에 달하는 것으로 돼있다. 김대중 정권 때 DJ당 셋방에 들어온 친노는 이제 안채를 차지한 형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친노를 어찌 다룰 것이냐를 논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른바 '친노' 모두 골수 친노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범친노 중에서도 당을 시도 때도 없이 강경 쪽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이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지적을 감안한다면, 당이 장기적 안목에서 친노를 어떻게 정리·정립할 것이냐는 것은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본다.

비(非)친노인 김한길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을 때 밖에서 보기에는 두 가지 측면의 해석이 가능했다. 당을 명실상부하게 탈(脫)친노로 이끌라는 당원의 명령이거나 아니면 친노가 사실상 뒤에서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대타(代打) 또는 위장의 성격이거나이다. 민주당을 위해서는 전자이기를 바란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 이후 취해온 행적으로 볼 때 현재의 위상으로는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 이긴다는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라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점은 민주당에 밀린다. 그럼에도 시대착오적 거리 투쟁, 극한 대결, 민생 외면이 강경 노선의 여파로 밀려가는 상황에서 국민의 선택은 좀 더 신중할 것이다. 특히 친노의 일부 또는 핵심이 친북을 넘어 종북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친북이나 종북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고, 정권을 못 잡는 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민주당의 리더십 부재(不在)에 대해 구심점이 없고 의원 각자가 1인 정당 역할을 하는 '프랜차이즈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친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한 핵심은 '당이 따로따로 논다'는 것이며 이 말은 친노를 떼어놓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김한길 대표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어차피 민주당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시청 앞 광장 천막에서 지친 듯 땀을 닦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내일의 민주당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