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2 년도

'안철수 현상', 해프닝인가(2012.12.10 )

푸른솔1 2012. 12. 12. 16:49

'안철수 현상', 해프닝인가                    2012.12.10

모호성, 우유부단, 오락가락… '새 정치' 구호를 완전히 접은 안철수씨는 이제 효력 상실
'安 효과' 차단에 힘쓰기보다 안보와 民生 제대로 제시하고 타협과 複數 이념 시대 열어야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대선의 최대 손실자(損失者)는 안철수씨다. 화려하게 등장한 신데렐라였기에 그의 뒷모습은 더욱 작아 보인다. 지도자급 인사의 한 번 잘못된 결정이 얼마나 결과를 크게 좌우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보여준 모호성, 우유부단함, 오락가락성(性)으로 인해 그는 지도자의 자격을 잃었다. 그가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 자만해서 단일화 게임에 응한 것도 실수였고, 일이 여의치 않아 중도 하차한 것도 패착이었으며, 정권 교체 운운하며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는 것도 그의 판단력을 의심케 한다.

안철수씨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면서 던진 출사표의 제목은 두 가지였다. '새 정치'와 '정권 교체'가 그것이다. 개념상 선후(先後)를 따지자면 "새 정치 하기 위해 정권 교체하자"는 것으로, 중요한 것은 새 정치고 정권 교체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목적인 새 정치는 접고 수단인 정권 교체를 업고 나왔다. 그에게서 새 정치를 빼고 정권 교체만 남으면 권력을 잡겠다는 기성·기득권 정치인과 다른 게 무엇인가? 그런 의미에서 그는 더 이상 '어제의 안철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이번 대선에서 단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인가. 우리 국민 사이에 기득권에 얽매인 여야의 고식적(姑息的) 구도를 깨는 새로운 기운을 기대하는 '공간'은 분명히 있었고 아직도 있다. 그것은 안철수씨가 대선판에 나서기 전 한때나마 30%의 인기를 얻었던 사실로 확인된다. 서울시장 선거가 그의 지지 선언 하나로 싱겁게 끝난 것도 그 징표의 하나였다. 그것은 적어도 1년 전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였다.

이제 '안철수 현상'은 죽었다. 잠복했는지는 몰라도 더 이상 국민의 마음을 끄는 그 어떤 지표나 깃발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 구도에 건전한 제3의 존재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처신은 배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가 퇴장했다가 다시 입장했음에도 지난 주말에 이뤄진 여론조사가 진영의 단합을 가속화했을 뿐 별다른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 것은 이제 '안철수'는 마력도 매력도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전에서 아직도 '안철수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이른바 '안 지지표'가 어느 쪽에 어느 규모로 합류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시장성(市場性) 때문이지 '안철수의 새 정치'가 주효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양쪽 진영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씨의 재등장을 사실상 단일화의 성공으로 치장하고 '국민연대'라는 반(反)박근혜 세력의 총집결로 상승효과를 더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문 후보에게는 그나마 이문이 남는 마지막 장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캠프는 더 이상 문·안 연대에 시선을 빼앗길 이유가 없다. 박 후보에게 안철수씨는 더 이상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박 후보 측은 그럼에도 여전히 '안(安)의 망령'에 사로잡혀 권력 나눠 먹기라는 등 '안(安) 효과'의 차단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시간 낭비고 헛손질일 뿐이다. 그들은 앞으로 자기들이 만들 '5년의 세상'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를, 그리고 한 번 약속하면 지킨다는 신뢰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유권자에게 확인시키는 전략과 전술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대선에 나선 면면(面面)들이 다가오는 세계적 변화의 중압감에 비해 왜소해 보인다는 국민의 불안감을 꿰뚫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적 리더십의 교체 속에서 찾아가는 안보의 단호함과 정교함,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민생의 절박함과 균형감을 자신 있게 내보이는 일이 시급한데도 아직도 미사여구, 인신공격, 잔머리 굴리기, 권투 스파링 같은 치고받기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선거 양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세계는 디지털로 가고 있는데 우리 대선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남아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8일 남았다. 국민이 편안히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세상을 뒤집어 놓는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권력자가 됐다고 비판 세력과 반대 언론을 탄압하는 절대권력 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좌파가 이겼다고 좌파 일변도로 갈 수 없고, 보수가 승리했다고 보수 천지가 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바야흐로 타협의 시대, 복수(複數) 이념의 시대다. 그러기에 비록 '안철수'는 빛을 잃었으나 '안철수 현상'은 새 대통령에게 중요한 부담과 빚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존재가 우리 정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씨는 그것을 몰랐거나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