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09 년도

민주당,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2009.02.08 )

푸른솔1 2012. 12. 4. 17:50

민주당,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2009.02.08

"여당의 인기가 바닥인데 야당도 덩달아 국민의 욕을 먹고 있으니…"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한나라당의 최대 우당(友黨)은 민주당이라고들 한다. 한나라당을 난형난제(難兄難弟)처럼 도와주고 있는 것이 민주당이라는 얘기다. 정당정치·의회정치에서는 정치적 반대당끼리 요철(凹凸)의 관계에 있어 A당이 인기가 떨어지면 상대당인 B당이 반사적 이익을 얻어 주가가 올라가는 것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다. 여야는 대립의 관계에 있지만 좋게 보면 보완 또는 대안(代案)의 관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의회정치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인기가 바닥을 기는데 야당인 민주당 역시 집권세력에 덩달아 국민의 욕을 먹고 있으니 한나라당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요, 민주당으로서는 통분해 마지않을 일이다. 지금 민주당은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꽤나 오래갈 듯해 보였던 우파-보수 정권이 초기부터 갈지(之)자걸음이니 이렇게 가다가는 4년 후에 정권을 되찾을 기회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500만표 차이로 졌지만 5년도 안 돼 권토중래할 수 있다면 이는 대단한 민심의 변환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태의 민주당으로서는 그 일이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민주당이 고장난 곳을 외면하고 구태의연하게 간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기간 동안 '발목 잡는 정당'의 이미지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변하려면 첫째, 철저한 의회주의로 복귀하는 일이다. 국회에서의 태도가 정당하고 당당해야 한다. 여당의 법안을 '악법'이라며 몽둥이와 망치로 저지할 것이 아니라 먼저 심의과정에서 토론을 통해 법안의 문제점을 드러내 보이고 반대 이유를 만천하에 알린 뒤 대안을 내 협상을 하거나 타협이 안 되면 표결에 임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끝내 물러서지 않으면 민주당은 자신들이 집권하면 문제의 법안을 폐기하거나 조항을 개정하겠으니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일부 야당 사람들은 '악법' 저지로 당장의 국민피해를 막아야 한다지만 선거에서 졌으면 5년을 기다리는 것이 정치의 순리다. 아니라면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둘째, '사람'이 안 보이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을 찾거나 만들어가는 일이 시급하다. 지금 민주당이 호기(好機)를 맞고 있다고 해도 그 호기를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표로 연결시킬 지도력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과거 민주당의 전신(前身)들이 수십년간 누려왔던 '인물의 호사(豪奢)'가 지금의 민주당에는 없다. 지금의 당내 난맥상으로는 '배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 다음, 민주당은 민주당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과거의 그 어떤 속박이나 제약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한 지역의 이점에 매달려서는 다른 지역을 잃는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의존이나 그에 의한 간접지배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386 운운의 세대적 고착상태나 '운동권 동창회' 체제로부터의 해방도 민주당의 진로에 새 활로를 불어넣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親)김정일 노선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전통적·정통적 의미의 좌파이념을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북한에 대해 유연하고 수용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편리하게 뭉뚱그려 김정일 정권과 북한 인민을 구분하지 않는 노선을 견지한다면 민주당은 진정한 의미의 진보-좌파-리버럴 정당이라고 말할 수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자신들의 지지세력과 표의 결집을 얘기하겠지만 그들과 더불어 야당정치는 할 수 있으되 국민과 더불어 집권세력으로 발돋움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DJ와 노무현의 '추억'에 사로잡힐 수 있겠지만, 우파 30여년 끝에 우파전횡을 거부했던 국민의 시선과, 좌파 10년에 식상한 국민의 시선은 결코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간단히 말하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 김정일 독재의 암흑상을 말하지 않는 '친북'으로는 21세기에 진입한 대한민국 국민의 심성에 어필할 수 없다. 격정적인 통일논리와 감상적인 민족주의만으로는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의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형세와 정세는 앞으로 2~3년 안에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과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 시각과 안목으로 북한문제 통일문제 민족문제를 봐야지, 북한 통치자의 언동과 북한 정권의 협박에 따라 춤추는 종북적 자세로는 결코 국민들의 선진적 대북관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에 낙담하고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찍은 '손가락'을 원망하는 국민들이 눈을 돌리면 거기에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의회정치를 이끌어 갈 건전한 '대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민주당은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