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0 년도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2010.02.21 )

푸른솔1 2012. 11. 27. 13:54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2010.02.21

思考 유연성, 너그러움은 대통령의 필수 과목…
원로 중진 참모 없이 지금 面面으로 대권 얻을 수 있겠나

현재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그대로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고 가정할 때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쩐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는 순위 1번에 있는 박 전 대표이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지금 국민들은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리더십 충돌을 보면서 단순히 세종시의 결과나 승부에 머물지 않고 나라의 앞날과 차기 정권의 문제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다음 대통령, 다음 리더십의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박근혜라는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과 품성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세종시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박 전 대표와 국민 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 박 전 대표는 다음 대권을 놓고 국민의 면접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박 의원이 말하는 '원칙'은 무엇이며, 국민과의 '약속'은 어떤 경우라도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를 국민은 묻고 있다. 정치는 원칙인가 타협인가, 민주주의는 토론과 다수결로 하는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채점표가 매겨지고 있다.

이 대통령도 국민의 심판을 받고 있다. 세종시에 관한 그의 태도 변화는 기회주의적인가 아니면 애국심의 발로인가 등등의 질문이 던져지고 그 답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다시 표를 달라고 하는 처지가 아니며 그에 대한 점수는 역사에 기록될 뿐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는 아니다. 그의 채점표에는 청와대가 걸려있고 보수-우파의 정권 재창출이 달려있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국회의사당 로비에서 툭툭 던지는 '촌평(寸評)정치'나 측근들의 '대변(代辯)정치'에는 오로지 MB에 대한 반발만 엿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제껏 그의 장점을 잘 살리며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행보를 해왔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 국민과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정치인, 비교적 깨끗하게 처신해온 정치인, 자기가 속한 정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것을 구해낸 잔다르크적 정치인,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를 위해 지원 유세에 나섰던 민주적 정치인, 그에 대한 많은 국민들의 눈빛은 참으로 따뜻했다.

그뿐인가. 그는 한국의 현대화가 큰 빚을 진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며 국모로까지 추앙받던 어머니의 딸이다. 그 부모를 비운의 총탄에 잃고도 꿋꿋이 살아남아 이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가려고 몸을 곧추세운 장렬한 여인의 이미지로 거듭 난 정치인이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지난 2년여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보여 준 태도와 행보, 특히 세종시 문제에서 드러내 보인 자세와 발언 등이 그의 대권을 향한 의욕과 의지에 과연 부합하는 것이며, 그가 이제까지 쌓아온 정치적 자산을 더욱 키워가는 것인가에 대한 자체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그를 묘사한 '얼음공주'라든가, '공주병' 운운의 표현들에서 '공주'의 이미지보다 '얼음'과 '병'의 효과음이 더 커 보이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그의 진영은 그에 앞선 여권의 후보들, 특히 당선의 목전에까지 갔던 정치인이 왜 마지막에 고배를 마셨는지 그것을 면밀히 철저히 분석하고 참고해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사고(思考)의 유연성, 반대자들도 넓게 포용하는 너그러움은 대통령의 필수과목이다. 자신의 주장에서 일자일획도 후퇴하지 않는 교조적 원칙론, 실수를 했으면서도 사과를 아끼는 태도에 국민이 어떤 점수를 줄 것인지 깊이 성찰했으면 한다.

그에게는 경험 많고 믿음직한, 한발 나가기 위해 반보 물러서는 지혜를 가진 원로 또는 중진급 참모 그룹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박 대통령이 남긴 것 중의 하나는 그는 훌륭한, 노련한, 그리고 자신이 귀를 열고 대해 준 원로급 정치인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몇몇 측근과 '신하'들의 막 뒤에 있지 말고 앞으로 나와 친이가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대화해야 한다. 치고받는 티격태격 싸움은 어리석어 보인다. 지금 그를 둘러싼 면면을 가지고 자신이 집권하면 정치적으로 사망할 것으로 믿는 친이-MB세력의 완강한 반대와 저항을 넘어 대권을 따내고 훌륭한 정치를 해낼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