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에 인질 잡힌 한국의 보수(2011.09.19 )
'한나라'에 인질 잡힌 한국의 보수 2011.09.19
할 수 없이 한나라당 찍어왔으나 이념, 對北·복지정책 어긋나고 민주당 제2중대로 끌려다녀
대선 직전 우파분열 우려하지만 보수정치의 진정한 성공 위해 '새로운 보수' 모색해야
이제까지 이 나라의 보수우파 진영은 선택의 여지 없이 언필칭 '보수정당'이라는 한나라당을 찍어왔다. 한나라당을 전적으로 지지해서가 아니었다. 안보 문제에서, 경제 문제에서, 북한 문제에서 그래도 한나라당이 낫다고 해서 그랬다. 그래서 이들을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세력'이라고 불러왔다.
이 '전통적 지지세력'이 깨지고 있다. 보수우파 사람들이 이 숙명적(?) 관계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이 반드시 그들의 이념을, 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의원,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이 보수우파 세력을 오갈 데 없는 이념적 무능력자로 여기며 자신들을 장중(掌中)의 물건 취급하는 데 분통이 터진다. 마치 "당신들이 우리 말고는 갈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당신들은 죽으나 사나 한나라당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오만과 조롱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한나라당에 인질 잡혀 있는 꼴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우리 국민, 특히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세력이 4년 전 그들을 선택해준 가장 핵심적인 동인(動因)인 이념 면에서, 안보 면에서, 대북인식에서 크게 어긋나고 있다. 이 나라를 좀먹는 친북(親北)·종북(從北)세력을 척결하기는커녕 그 기간 동안 종북세력의 방자한 행동과 판도는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됐다. 경제·사회면에서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기존의 보수적 트레이드마크인 시장자유, 친(親)기업, 건전재정의 모토를 버리고 포퓰리스트적인 복지를 따라 민주당의 제2중대로 가고 있다. 공권력의 강력한 집행, 법치 면에서도 야당에 질질 끌려 다녀온 4년이었다. 이럴 바에는 지금 한나라당이 가고 있는 길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떠나 보수우파 사람들이 굳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보수우파 진영은 우파의 다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왜 한나라당에만 목을 매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을 대변할 '새로운 보수'의 등장을 요구할 시점에 왔다. 물론 한나라당의 무슨 '대세론', 두자릿수 이상의 지지도(여론조사상)는 한나라당의 대안으로 나서려는 사람들에게 넘기 어려운 장애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 보면 지금 보수우파 진영을 대변할 정치세력의 다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독점적 상황 때문에 생기는 한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수세력은 스스로에게 주눅들거나 쭈뼛거릴 필요가 없다. 한나라당이 그들을 대변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과감히 한나라당을 버려야 한다. 그것에 안주할수록 한나라당은 보수우파 세력 위에 군림하며 더욱 기고만장하게 반(反)보수적 길을 갈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선택과 배신의 문제다. 우리가 뽑아준 대로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다른 대변자를 찾는 것이 순리(順理)의 정치다.
'새로운 보수'의 길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보수의 다변화가 결국 우파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고, 그것은 좌파세력에게 정권을 공짜로 갖다 바치는 것이라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한 보수인사는 "우파가 분열하면 민주당이 정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고 그것은 곧 민주당의 1중대인 민노당의 세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주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며 우파의 분열을 걱정했다. 그것이 바로 한나라당의 '보수 독점(獨占)'이라는 벽을 넘기 어려운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우파는 언제까지 '한나라당'에 갇혀 있을 수 없다. 어차피 지금의 한나라당 구성요소나 지도부의 색깔들로 보아 보수의 길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굳이 그들에 끌려다니는 것보다 '분열'이 주는 충격을 감수하는 것이 한 치유책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분열은 '단일화'의 전(前)단계일 수 있다. 야당과 야권은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단일화의 드라마를 연출해 결정적 재미를 보고 있는데 보수우파라고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법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우파는 지난번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처럼 단일화를 할 줄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너무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우파의 정치꾼들은 정권을 담당할 자격과 능력이 없다. 그것이 한국정치의 숙명이라면 도리가 없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나라당식(式)' 정치의 방향이나 체질로는 한국의 보수정치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대표나 대권주자들, 지도부가 독점체제에 안주하면서 보수우파 세력을 장중의 물건이나 '떼어놓은 당상'쯤으로 여기며 민주당의 짝퉁 노래나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재집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보수우파 주류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번에 정권을 넘겨주는 한이 있어도 '새로운 보수'와 더불어 재기(再起)를 모색하는 것이 한국정치의 긴 장래를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