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1 년도

한나라당이 사는 길 죽는 길(2011.05.02 )

푸른솔1 2012. 11. 14. 10:33

 

4·27 재·보선 유권자 뜻은 "잘난 척 까불면 다친다"
親李·親朴싸움, 대세론은 '까부는 짓'으로 비쳐…
대선 주자들은 새로 출발선에 선 자세로 나서야

한나라당이 집권을 유지하는 길은 이제 한 갈래로 모인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친이(親李)계와 친박(親朴)계의 해체를 공동선언하고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黨)을 대권도전 단일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 대통령도 살고 박 전 대표도 산다.

현재로서 이 대통령의 퇴임 이후는 불투명하다. 그의 부단한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논쟁적 대통령, 또는 찬·반이 엇갈리는 대통령으로 불려왔다. 그렇기에 퇴임 후 그의 재임 시 문제들은 어쩌면 MB시대를 논쟁의 구렁으로 몰아갈 수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정권을 잡는 경우 그의 처지는 험난해질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유지하는 경우라도 후임 대통령의 당선을 주도하기는커녕 레임덕 방지에만 몰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의 처지는 정권교체 경우에 못지않게 곤궁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권교체 역사에서 전임 대통령의 험난한 꼴을 여럿 보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살해됐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같은 군인 출신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주고도 백담사로 귀양 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3당통합에도 불구하고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을 감옥에 보냈고, 김대중 대통령은 YS에게 패배한 뒤 정계 은퇴에 해외로 나가는 길을 택하고서 보복을 면했다. 가족의 비리는 YS와 DJ를 괴롭혔고, '노무현의 자살'로 귀결됐다.

임기를 아직 1년 반 이상 남기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4·27 재·보선과 내년 4월 총선거라는 일정은 그에게 불운(不運)일 수 있다. 여름휴가철 끝나고 정기국회를 치르고 나면 곧바로 총선이다. 4·27 재·보선에서 시작한 선거일정은 MB를 예상보다 빨리 정치권 밖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고 그의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특히 재·보선이 그 자신과 여당의 패배로 끝났고 현재로서는 총선의 귀추도 불투명한 마당에 MB가 남은 임기를 즐길 여유는 없다. 여기서 업적에 매달리기보다 '성공한 후임'을 만드는 데 공을 세우고 '안전한 전임'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박 전 대표는 지금 대선가도에서 여·야를 통틀어 부동(不動)의 1위에 있고 여당 내에서는 압도적 선두주자이기에 차기(次期)의 책임과 처신에서 이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그에 앞선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지면 그가 비록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식물 대통령'에 불과하다는 것은 전 세계 여소야대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또 총선에서 이긴 야권이 남은 7개월간 그가 안전한 대선가도를 가도록 내버려둘 리도 없다. 온갖 '흠집'으로 그를 괴롭히려 할 것이다.

친이계의 몇 인사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라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싸우고 죽겠다"며 개헌이다, 무슨 모임이다 하면서 진(陣)을 치고 나서고 있다. 일부는 "박근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야당이 집권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박 전 대표에게 해악적이다. 게다가 결국 박 전 대표마저 통합과 소통의 지도자이기는커녕 갈등과 분파의 장본인이고 한쪽 계파의 수장으로 행세한다면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들은 이번 4·27 재·보선에 나타난 유권자들의 심리를 분명히 읽어야 한다. 김해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뜻은 "우리가 언제까지나 노무현에 붙잡혀 있지는 않다"는 것이며, 분당의 그것은 "우리는 언제나 한나라당의 고정표가 아니다"라는 것이고, 강원도의 심리는 "지명도 있다고 찍어주는 것 아니다"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구든 기득권자로 행세하며 잘난 척 까불면 다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 친이·친박 싸움에 머물러 여론조사에 희희낙락하며 '대세(大勢)'에 안주하는 행태는 한마디로 '까부는 짓'이다. 그것이 '이회창 학습 효과'다.

지금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론조사도 무용지물로 가고 있다. 더더욱 국민은 이념적 분화에 떠밀려 가기보다 나라가 그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선택의 기준을 두고 있다. 이런 선거의식의 변화가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 연장된다면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대선주자들은 지금까지의 숫자는 지우고 새로 출발선에 선 자세로 나서야 한다.

계파를 초월해 단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 사람 모두가 정치적으로 다치거나 몰락하는 것만은 웬만큼 정치지형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 단계 더 가서 당의 분열이 더욱 심화돼 공천 과정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일어나고 당의 지도체제는 물론 경선체제가 흔들려 결국 경선불복의 사태에 이르면 당이 분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수도 있음을 이 대통령, 박 전 대표 그리고 한나라당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2011.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