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조선일보/2011 년도

전향자(轉向者)들의 시대( 2011.01.24 )

푸른솔1 2012. 11. 14. 09:51

 

右와 左의 일정 주기정권 교대가 바람직… 그러려면 역지사지해야
허접한 일로 말 장난하는 천박한 행태로는 그런 정치 요원하다

바야흐로 전향자(轉向者)의 시대가 오고 있나. 내년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어쩌면 정치적 전향자들에 대한 심판대가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이 나라의 이념적 진로(進路)에 대한 중요한 방향제시가 될 것이다.

정치적 전향자란 간단히 말해 이른바 우파에서 좌파로, 또는 좌파에서 우파로 이념체계를 바꾼 사람을 말한다. 민주당손학규 대표, 한나라당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그 대표적 인사로 꼽힐 수 있다. 이들이 바로 내년 선거에서 대통령직 또는 유사한 지위에 도전하고 있어 국민적 선택이 주목된다. 그 결과에 따라서는 우리는 하나의 이념체계 또는 신념, 주의, 사상만으로는 이 세상을 요리해나갈 수 없고, 때로는 좌·우간에 복합적 또는 선택적 상황에 내몰리는 현실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건국 후 이제까지의 정치는 우(右), 아니면 좌(左)였다. 전쟁과 남북대립, 군사혁명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파가 40년을 집권한 끝에 좌파 10년이 탄생했고 다시 우파가 집권 중인 것이 그 역사다. 좌·우의 적대적 대립 양상으로 인해 우리 정치는 타협이 거의 불가능한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이었으며, 죽기 아니면 살기 식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치적 전향에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전향'은 여전히 '배신'의 영역에 속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량과 능력의 소유자라도 배신자의 낙인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 사이에서 김문수 지사를 두고 "능력은 있어 보이는데 과거 열혈 운동권이고 좌파정당까지 만들었던 그를 과연 믿을 수 있느냐?"는 의문을 놓지 않고 있다. 김 지사가 그의 노력과 실적에 비해 한자릿수 인기도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야당과 좌파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권과 재야인사 또는 좌파단체의 인사들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피나는 변신의 노력과 전력투구에도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원래 운동권 출신으로 YS 때 여당에 들어가 출세한 그가 다시 야당대표로 변신한 것을 의혹의 눈으로 보는 좌파의 시선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여전히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결국 '손학규 현상'의 최대 피해자는 김문수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신보다 더 못한 것은 '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어림도 없을,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전향 정치인들의 입신(立身)이 있었고, 또 그들의 대권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세월 4대강, 세종시 문제에서 우파의 고민과 좌파의 갈등을 동시에 목격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에서 북한을 옹호하려는 교조적 좌파논리에 고민하는 진보세력을 보았고, 전쟁불사를 내세우는 도식적인 우파의 '애국심'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젊은 보수도 볼 수 있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별 호응을 못 받고 그들이 내건 '이명박 독재'구호에 흥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이제 시대가 '독재와 반(反)독재'의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나라당이 뒤늦게 '부자감세'와 '친서민'을 외치고 있는 것도 세상이 자유경제, 기업, 성장이라는 우파논리 일변도로는 다스려지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어느 하나의 이념체계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재단하기 어려운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와 좌가 지켜야 할 기본바탕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키며 번영케 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헌법정신의 문제다. 비록 좌파라고 해도 친북·종북의 길을 가서는 안 되는 것이며, 우파라고 해도 독단과 독선의 길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파라고 해서 좌파의 모든 것을 '적안시(赤眼視)'하거나 좌파라고 해서 우파의 모든 것을 '꼴통시(視)'하는 경향에 이끌려서도 안 된다. 바라건대 우리는 미국의 공화-민주, 일본의 자민-민주-사회, 영국의 노동-보수, 독일의 기민-사민의 경우처럼 우파와 좌파가 일정한 주기로 정권을 교대하는 선진정치의 길로 가야 한다. 보수정당이 기업을 활성화해서 나라의 곳간을 채우느라고 소홀했던 분배와 복지의 기능을 진보-좌파정당이 들어와 해주고 다시 곳간이 비워지면 보수정권이 들어서는 기능의 정치, 순환의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치로 가야 한다. 지금 서로의 약점을 극대화하면서 허접스러운 일에 말장난을 일삼으며, 친북 신드롬에 매달려 있는 천박한 원내(院內)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그 길은 너무나 요원해 보인다.  201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