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의 결말(2012.11.12 )
'安 단일화'로 민주당 숙청되거나 '文 단일화'로 중도세력 물거품…
양당 체제라는 단순 도식만으론 다양한 국민 욕구·이념 못 반영
안철수와 제3세력 살아남으려면 정당 만들어 국민 속 뿌리내려야
지금 세상의 관심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쏠려 있다. 우리가 다음 대통령을 뽑는 것인지, 단일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지만, 단일화가 과연 성사될 것인가, 된다면 누구로 단일화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단일화 게임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본(本)게임은 그다음의 일이다.
어떤 방식에 의해서든(물론 그 '방식'이라는 것이 태풍 그 자체지만) 안철수로 단일화되면 우리 정계는 엄청난 지각변동에 휩쓸릴 것이다. 먼저 민주통합당은 그날로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 50년 전통 야당의 역사에 없는 참변이고 야당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우르르 안철수 쪽으로 몰려가는 일대 홍수(洪水) 사태가 불가피하게 벌어질 것이다. 말이 신당 창당이고 '새정치 연합'이지 현실은 민주당의 숙청 내지 함몰이다. 그러지 않아도 '기득권 타도'를 깃발로 내건 안 후보와 그의 진영 사람들이 민주당의 기라성(?)같은 기득권들을 그냥 존치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으로 단일화되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새로운 담론으로 제기됐던 '안철수 현상'은 물거품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안철수가 모처럼 일궈놨던 제3세력의 존재 가치와 실효적 의미는 민주당이라는 기성 정당의 벽에 부딪혀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내세웠던 '정치 경험 없음'의 장점은 빛을 잃을 것이다. 그들의 표가 문재인으로 간다는 보장도 없다.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쪽이 여러 조건과 협상 거리를 미리 못박아 두겠지만 지난 역사에서 그런 것이 지켜진 전례는 없다. 김영삼이 3당 통합을 해서 대통령이 됐지만 금고 속에 넣어둔 '내각제 개헌'이라는 3자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됐고, 김대중도 김종필과의 DJP 연합 때 역시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애초에 물 건너갔다. 노무현과 정몽준의 경우도 이런저런 약속이 있었지만 그 역시 무위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등 공동 정부 얘기가 나오지만 두 사람 다 부산 출신이라서 현실성은 없다. 게다가 5년 내내 권력 싸움, 자리 다툼으로 내홍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진영이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 있다. 이제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갑(甲)과 을(乙)이 겨루는 양당 체제는 한계에 왔다. '갑' 아니면 '을'이라는 단순 도식만으로는 다양한 국민의 욕구와 이념체계를 수용하고 반영해 나갈 수 없다. 거기에 중도 또는 제3세력의 존재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 '안철수 현상'이 조명받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며 이는 그런 시대적 요청과 무관하지 않다. 안철수가 여기서 민주당 또는 '문재인'이라는 기득권과 타협한다면 안철수 현상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타협은 좋게 봐서 원칙의 굴절이며 심하게 말하면 안철수 현상의 '위선'으로 귀결될 것이다.
안철수와 제3세력의 존재 가치가 살아남는 길은 정당을 만들고 국민 속에 뿌리내리며 안착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아무리 날라리라고 해도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없으며, 안철수 현상이 아무리 바람몰이를 해도 그 '현상'이 민주당의 '조직'을 단숨에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독일의 녹색주의자들처럼 정당을 만들고 조직을 뿌리내리며 국민의 광범위한 호응을 이끌어내고 국회 내에 실천 능력, 즉 의석을 확보해서 마침내 남의 들러리가 아닌 자신들만의 정책을 이끌어내는 장기적·합리적 포석이 필요한 것이다.
설혹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게임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그래서 민주당이 그에게 몰려온다고 해도 한때의 인기(人氣)로 얻은 정부는 오래가기 힘들다. 더더욱 갈라지고 흩어진 의석 수로 새누리라는 다수당과 대결하기에 '안철수 정부'의 힘은 너무 미약할 뿐이다. 한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이 표방하는 원칙이 국민에게 어필하는 것과 그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국정(國政)을 떠맡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가 살아남아 그 '현상'을 조직화해 국민의 선택에 부응하려면 단일화를 통해 민주당에 종속하거나 민주당을 깨부수는 등 민주당의 '변수'로 안주하지 말고 민주당의 운명에 연계되지 않는 독자적 정치 세력을 형성해 한국 정치의 '상수(常數)'로 성장하는 길을 가는 것이 상책이다. 안철수씨는 좀 더 겸허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가 일부 국민에게 신선함을 줬다고 해도 두각을 나타낸 지 불과 1년도 안 돼 한국의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 만큼 한국 정치의 연륜과 국민의 정치적 성숙함이 일천(日淺)하지는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201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