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욕(權力慾)도 부패한다"(2012.10.01 )
다음 대통령은 임기 중에 경제 위기, 세계 군사적 충돌, 북한 붕괴에 직면할 가능성
그런데도 세 유력 후보는 미래는 없이 과거 이야기만… 참모들도 표 계산만 분주해
개성(個性)이 없다. 그 나름의 특성도 없다. 그저 비슷비슷하다. 거기다가 서로 따라 하기까지 한다. 이 어려운 시대에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사과하느라고 바쁘다. "나는 떨어져도 좋다. 내 소신대로 가겠다. 나를 있는 대로 판단해달라"고 나서는 후보가 없다. 한마디로 "나를 따르라"는 지도자가 안 보인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다. 그 시기에 분명한 것은 경제의 위기다. 전 세계적인 식량의 위기, 자원의 위기, 환경 재앙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성장과 복지, 대기업 때리기, 양극화 현상 등에만 관심을 두고 정치권도 이런 문제의 근시안적이고 포퓰리스트적인 대안에 논의를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세계는 한층 본질적인 식량과 자원의 부족, 이를 둘러싼 식량 안보·자원 안보라는 '전쟁'에 진입할 것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며 새 지도자의 결단과 혜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기에 세 후보의 모습은 안 보인다.
또 그 시기에 세계는 3차 대전에 버금가는 군사적 충돌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서구 기독교권(圈)과 이슬람권 간의 문화적 충돌, 인종적 갈등, 종교적 대립은 심지에 불을 댕긴 상태로 가고 있다. 언제 터질지는 몰라도 그 충돌은 타협이 불가능해 보인다. 군사적 충돌 기미는 동북아에서도 엿보이고 있다. 중국은 여러 곳에서 G2의 위세를 뽐내며 영토적 욕심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와 곳곳에서 충돌할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세력 재편 과정에서 빚어지는 필연적 상황이다. 우리의 새 지도자는 중국과 일본의 신(新)팽창주의에 어떻게 맞설 것이며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외교적·전략적 자세를 재정립할 것이냐는 중대하고도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새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대처해야 할 것은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다. 북한의 존립 문제는 2010년대에 우리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자체적 원인 때문에 또는 어떤 국제적 역학관계로 인해 심각한 체제 도전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상황을 수용하고 수습할 것인가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다음 대통령이 직면하게 될 가장 의미 있는 역사적 과제일는지 모른다.
게다가 새 대통령은 여러 시대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깊이 상처 입고 많이 갈라진 국민의 마음과 생각, 세상을 보는 시각과 철학을 통합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적대적·파괴적으로는 가지 않도록 다듬고 살펴야 할 책무를 가진다. 그 과정에서 각계각층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기회주의적 접근 방식보다는 절제하고, 타협하고, 양보하고, 기부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지혜와 설득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시대적·전지구적(全地球的) 상황과 맞물려 볼 때 우리 앞에 나서 있는 세 대통령 후보의 모습은 아직은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 국민과 그들 후보의 관계에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과거'뿐이다. 미래에 대한 얘기는 없다. 그들의 과거에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얘기는 지도자로서 숙성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신이 없고 개성도 없어 보인다. 변신하기가 바쁘고, 사과하느라고 바쁘고, 말 바꾸기가 잦고, 이리저리 기회주의적 처신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저럴진대 저들이 대통령이 된 뒤에 주요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소통'이고 '통합'이고 '개혁'이고 '국민'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고, 이제 허울뿐이고 진정성 없는 그 단어들에 싫증이 날 정도다.
본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끌어모은 이른바 참모란 사람들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어디선가 본 사람들이다. 얼마 전까지 저기에 있던 사람이 오늘 여기서 보인다. 어떤 사람은 세 군데 다 인연이 있어 한 바퀴 돌았다는 소리도 듣는다. 이름이 좀 있다는 선거 전문가나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교수는 요즘 출장 다니느라 바쁘다. 이러니 개성이 있을 리 없고, 소신이 돋보일 리 없고, 특화(特化)가 설 자리가 없을 수밖에 없다. 들리느니 젊은 세대가 어떻고, 지방 표가 어떻고, 단일화 전략이 어떻고 등등 숫자와 기회주의적인 얘기뿐이고, 나라를 바로 지키고 세계를 내다보며 국민을 어디로 이끌어갈지에 대한 원칙적 논의는 없다.
미얀마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부패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권력을 잃을 것이란 두려움이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지도자는 포퓰리스트적인 흐름과 경향성에 역행(逆行)해서 진실을 말하고 우리의 한계를 지적했다가는 권력을 잃게 될까봐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 수치의 말에 덧붙이자면 권력을 잃는 것 못지않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집착도 부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201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