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통합진보당은 '무죄'인가(2012.05.14 )
약자인 국민 위한 '무죄 추정', 公黨이 보호용으로 쓰다니
밥그릇 싸움 '속살' 내보인 건 위선·독선·아집으로 인한 한계
'우린 뭘 해도 괜찮다' 여기면 그들의 미래 기대하기 어려워
이래도 통합진보당은 무죄인가? 통진당의 공동대표 이정희씨는 여전히 로봇처럼 차가운 얼굴로 '무죄(無罪) 추정'에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선부정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회의 도중 단상에서 난투극을 벌인 것도 이정희씨에게는 '관리 부실(不實)'일 뿐인가.
우리는 이정희씨의 '무죄 추정' 주장에서 진보세력, 특히 NL들의 독선과 아집을 읽는다. 그리고 이들이 12일 벌인 폭력과 난동에서 세상을 조롱하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을 본다. 우리는 이들 세력이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 국민 10%의 지지를 받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속인 것인가, 속은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 10%씩이나 된다는 것인가. 독재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기득권 세력의 독주를 막는 것도 아니고, 진보 본연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투쟁도 아닌 밥그릇 싸움에서 폭력을 쓰며 여전히 '무죄 추정'을 요구하는 뻔뻔함에 결국 "너희도 별것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느낀다.
이정희씨는 지난 8일 통진당 당권파만이 참석한 경선부정진상조사위 보고서 공청회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들고 나왔다. 그는 "유죄의 증거가 없으면 무죄라는것이 근대법의 원칙이며, 근대 국가의 흔들리지 않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무죄 추정은 재판에서 형사피고인이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는 일단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적 권리다.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재판에 계류 중인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엄격히 법리적으로 따지자면 무죄 추정 운운할 대상이 아니다. 그래도 민주주의 제도 나라에서 공당(公黨)의 경선에 부정이 개입된 것이라면 당연히 국민의 관심사이고 또 국민 세금을 보조받는 정당의 일인지라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에 속한다고 볼 때, 조사결과를 기다려 달라며 비유의 형식으로 무죄 추정을 요구할 수는 있겠다고 치자. 하지만 이씨는 이미 선거의 관리 부실이지 부정은 아니라는 당권파의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 결론을 기다릴 것도 없으면서 무죄 추정 운운하는 것은 속임수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사람을 잡아들이지 말라고 하는 게 검찰에 대한 우리의 수십 년간 태도였다." "오류가 있다는 걸 당신이 입증해보라고 하면 안 된다. '너 입증 못하면 의혹이 있는 거잖아', 결론이 이렇게 나면 안 되는 거다. 결론이 이렇게 나면 여론은 의혹이 있는 게 된다." "마녀사냥은 아니어야 한다. '100% 모든 의혹을 입증해봐. 안 그러면 너는 마녀야', 이게 중세(中世)다." 그 이정희씨는 3년 전인 2009년 4월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와 당시 언론사 간부의 성(性)의혹 사건과 관련, 사실관계가 전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공인(公人)'이라는 이유만으로 실명을 거론하며 상대방을 죄인 취급했다. 마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입증해봐. 그러지 못하면 당신은 의혹이 있는 것'이라는 식이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익명의 법대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당의 경우 법적 책임을 넘어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한 입장을 보였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국민의 사법적 기본권이지 정당정치에 악용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법의 정신으로 볼 때 무죄 추정은 법적으로 보호장치가 부족한 약자를 위해 마련된 법 정신이며 사법기관이 형사피고인을 마구 죄인 다루듯 하는 관행과 버릇에 제동을 거는 피고인의 방어수단이다. 이것을 공인이고 공당이고 정치인이자 당의 실력자인 사람들이 자기 보호용으로 쓰고 나오는 것은 법을 모독하는 처사다.
이 문제를 둘러싼 진보세력 내부의 공방을 보면 "진보라는 대의(大義) 앞에 부정(不正)은 때로 불가피한 선택이고, 그 수단의 잘못으로 인해 대의를 그르쳐서는 진보의 내일이 없다"는 쪽이 당권파의 논리고, "여기서 방법의 잘못을 털고 가지 않으면 진보는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비당권파가 있는 것 같다. 국민이 진보에 눈을 돌리며 관심을 보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진보의 순수함, 깨끗함, 솔직함이 혹시 권력의 대안 또는 견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진보의 진정한 문제는 무죄 추정 따위에 있지 않다. 국민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즈음에 느닷없이 진보세력의 '속살'을 내보인 것은 그들의 위선, 독선, 선민의식, 유아독존으로 인한 스스로의 한계 때문이다. 자기들은 무슨 말을 해도 괜찮고 무슨 행동을 해도 '무죄'라는 사고에 안주하는 한, 진보정당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2012.05.14